"손바닥이 손등과 싸울 수는 없어..세상은 다 하나야"

허연 2022. 8. 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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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명 강의' 펴낸 인드라망공동체 대표 도법스님
"지극한 진리는 어렵지 않다..
신심명 첫 문장에 눈 뜨여
분별하는 것에서 불행은 시작
눈 감고 삼매에 빠지는 것 보다
눈 뜨고 하늘 보는게 깨달음"
불교 생명평화운동 이끌어
사회 분열때마다 중재 역할
불교 생명평화운동 선구자인 도법 스님은 시간이 날 때마다 홀연히 탁발순례를 떠난다. 순례길에서 잠시 쉬고 있는 스님. [사진 제공 = 실상사]
'지극한 진리(깨달음)는 어려울 것이 없네(至道無難).'

중국 수나라 때 큰 스님인 승찬대사가 쓴 선(禪) 해설서 '신심명(信心銘)'의 첫 귀절이다.

최근 남원 실상사 회주이자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대표인 도법스님(73)이 신심명을 풀어 쓴 '신심명 강의'(불광출판사 펴냄)를 펴냈다.

"어릴 때 해인사에서 성철스님을 모시고 산 인연이 있습니다. 그때 성철스님으로부터 '신심명' 이야기를 가끔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50년쯤 흘러 지난해 우연히 성철스님이 쓴 '신심명 강설'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진리가 어렵지 않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어요. 수행자인 저에게도 삼매 깨달음 신비 같은 것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이었는데, 신심명은 당당하게 '어려울 것 없다'고 말하고 있었어요.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신심명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중도의 자세다. 분별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이 중도의 마음이다. 깨달음은 분별과 집착이 없으므로 어떤 차별도 없는 세계다. 나와 남, 미움과 사랑, 있음과 없음, 옳고 그름 같은 구별에서 벗어난 곳에 깨달음이 있다.

이번에 출간된 도법스님의 '신심명 강의'는 신심명 한 구절 한 구절에 담긴 가르침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신심명은 불교를 공부한다는 마음보다는 인생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면 좋아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본래 없는데 사람들이 이것저것을 분리하고, 좋다 나쁘다 차별하면서 아수라장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대표로 생명평화 운동을 이끌고 있는 스님은 신심명에서도 그 가치들을 찾아낸다. 인드라망은 부처가 세상 곳곳에 머물고 있음을 상징하는 말이다.

"신심명의 중도사상은 곧 생명과 평화라는 개념으로 연결됩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생명이 안전하고 삶이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인간들의 가장 원초적인 바람이고,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의 염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잘 안될까요. 분별하기 때문입니다. 종교 이념 국가라는 벽이 생명과 평화를 가로 막고 있어요. 분별을 벗어나라는 신심명의 가르침은 곧 생명과 평화를 의미합니다."

스님은 깨달음이란 억지로 참고 매달려서 도달하는 지점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사람들은 일상을 누리는 것 자체가 최고의 기적이라는 걸 모르고 있어요. 일상을 버린 채 삼매니 깨달음이니 하는 것들을 기적이라 여기고 그것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눈으로 푸른 하늘을 보는 것과 눈이 먼 상태에서 깨달음이나 삼매를 만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아마 백이면 백 눈을 뜨고 자유롭게 푸른 하늘을 보는 것을 선택할 겁니다. 우리가 누리는 일상이 곧 기적이고 깨달음이에요."

1965년 금산사에서 출가한 도법 스님은 실상사 주지시절 생명살림을 외치며 사찰 소유의 땅 3만평을 내놓고 귀농전문학교를 설립했다. 1998년 말 조계종이 총무원과 개혁회의로 양분되어 다툴 때 총무원장 권한대행으로 분규를 마무리 짓고 미련없이 실상사로 내려갔다. 이듬해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창립해 폭넓은 생명평화운동을 시작했다. 2004년 주지를 내려놓은 후, 탁발순례를 떠나 5년 동안 3만리(1만1781.8㎞)를 걸으며 8만명의 사람을 만났다. 2015년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로 피신했을 때 중재한 것도 스님이었다.

"내가 사는 극락전 마당에는 수십 종의 풀꽃이 피어 있어요. 누구는 선택받고 누구는 버림받는 법이 없어요. 모두 다 꽃으로 인정받고 존중받습니다. 마음에 드네 안 드네 하는 양극단에 빠질 이유가 없어요. 풀밭의 사고방식이 최고의 가르침이에요. 있는 그 자리, 그 상태로 홀가분하고 편안하면 충분하지 않은가요? 이 사실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한가요."

스님은 세상의 갈등을 이겨낼 수 있는 진리가 신심명에 있다고 말한다.

"손바닥과 손등을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세상은 모두 손바닥과 손등처럼 의지해서 존재하고 있어요. 서로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한 선택입니다. 공격하고 방어하는 일이 도대체 왜 필요합니까. 손바닥이 손등을 공격합니까?"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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