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일대일로'의 덫에 빠진 케냐 고속철도..대선 쟁점으로 부상
오는 9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케냐에서 중국의 자본과 기술로 건설된 표준궤도철도(SGR)가 대선 쟁점으로 부상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7일 보도했다. 유력 후보들은 당선되면 철도 건설 계약서를 공개하거나 중국과 재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NYT는 정치 엘리트들의 부패가 케냐 대선의 핵심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2017년 개통한 SGR이 부패의 상징으로 여겨진다고 전했다. 케냐 반부패 기구 수장을 지낸 언론인 존 기통고는 NYT에 “SGR은 부패라는 이름의 왕관에 꽂힌 보석”이라며 “현 (우후루 케냐타) 정부의 비극적 유산”이라고 말했다.
SGR은 남부 항구도시 몸바사에서 수도 나이로비로 이어지는 총연장 578Km의 철도다. 케냐는 영국 식민지 시절 건설된 철도의 노후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GR 건설을 추진했다. 케냐타 대통령은 2013년 착공식에서 새 철도가 일자리를 창출하고 케냐를 산업화된 중진국의 반열에 올려놓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케냐는 36억달러(약 4조7000억원)의 건설비 중 30억달러를 중국수출입은행의 차관으로 조달했다.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던 중국과 철도 건설에 필요한 자금력이 부족했던 케냐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러나 9년이 지난 지금 SGR은 가뜩이나 어려운 케냐의 경제를 짓누르는 골칫덩어리로 변모했다. SGR은 운영 첫해에만 1억달러(약 130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의회는 SGR을 통한 운송이 도로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두 배의 비용이 든다는 결론을 내놨다. 2019년부터 15년 기한의 차입금 상환이 시작되면서 난관에 봉착한 정부는 철도 사용량을 늘리기 위해 수입업자들이 수입 물품을 철도로 운송하도록 해 트럭 운전사들의 대규모 실직과 시위를 초래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보수적으로 계산하더라도 몸바사에서만 8100명의 트럭 운전사들이 실직할 것으로 전망됐다. NYT는 케냐타 정부가 차입금 상환을 위해 일련의 증세와 긴축 정책을 남발해 식량 가격과 연료 가격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SGR은 사업 시작 단계부터 추문에 휩싸였다. 중국 국영 도로교량공사(CRBC)가 시공사로 선정되면서 특혜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게다가 사업 타당성 평가도 케냐 정부가 아니라 CRBC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냐 정부와 시공사 측이 야당 의원을 매수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야권은 CRBC와의 계약이 불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해 2020년 항소법원에서 승소했다. 케냐 정부는 이에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철도 건설을 위한 부지 매입의 불투명성도 논란이 됐다. 케냐 철도 임원 및 공공부지 관리 기구의 수장 등을 포함해 적어도 12명의 관리들이 부지 매입 과정에서 200만달러 이상의 예산을 초과지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야권과 활동가들은 유력 정치인들이 철도 건설 비용을 부풀려 이익을 취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SGR은 또 철로가 나이로비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도록 설계돼 환경파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케냐 정부는 애초 SGR을 이웃 국가 우간다까지 연결할 계획이었으나 자금 부족으로 건설이 중단된 상태다. 중국도 최근 일대일로 사업이 개도국을 부채의 늪에 빠뜨린다는 비판에 직면해 대출을 자제하고 있다.
야권 후보로 출마한 윌리엄 루토 현 부통령과 여권 후보인 라일라 오딩가 전 총리는 당선 후 SGR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루토 부통령은 철도 건설 계약서를 공개해 국민의 검증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오딩가 전 총리는 중국과 계약조건을 재협상해 대출 이자를 낮추겠다다고 밝혔다. NYT는 두 사람 모두 부총리와 총리로 정권에 몸 담았지만 자신들은 SGR 실패와는 무관하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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