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82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주역' 레전드 4인 공개

금윤호 2022. 8. 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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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야구위원회(KBO) 제공

(MHN스포츠 금윤호 기자) 한국야구위원회(KBO)가 한국야구사에 한 획을 그었던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주역 레전드 4인을 공개했다.

1982년은 6개 구단 체제의 프로야구가 첫 발을 뗀데 이,어 7월 서울 잠실야구장에서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대표팀이 극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 우승을 위해 많은 스타 선수들이 프로 합류를 보류하기도 했고, 당시 주축이던 많은 실업 및 대학 선수들이 KBO리그 출범 이듬해인 1983년에 프로에 데뷔했다.

이 선수들은 아마야구 시절 명성에 걸맞게 곧바로 KBO 리그를 주름잡았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주역으로 활약한 선수들 가운데 전문가와 팬이 선정한 레전드 40인에 포함된 4인은 장효조(6위)와 김시진(20위), 한대화(28위), 김재박(31위)이다.

먼저 '타격의 달인'으로 불리는 장효조는 통산 타율 0.331로 이 부문 2위에 올라있다. KBO리그에서 3,000타석 이상 소화한 선수 중 장효조 보다 높은 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현역으로 키움 히어로즈에서 뛰고 있는 이정후(0.341·8월 7일 기준)가 유일하다.

작은 체구에도 아마추어 시절부터 타격에 있어 독보적인 존재로 이름을 날렸던 장효조는 입단 첫해인 1983시즌 타율 1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1985년부터 1987년까지 3시즌 연속 타율 부문 타이틀을 차지했다.

KBO 리그 40시즌 동안 타율 부문 1위에 4번 오른 선수는 장효조와 양준혁(전 삼성 라이온즈·1993, 1996, 1998, 2001) 두 명뿐이다. 통산 출루율 1위(0.427)답게 출루율 타이틀은 6회(1983~1987, 1991)나 차지했다. 이는 통산 출루율 공동 2위에 올라있는 김태균(0.421)의 4회 수상보다 2회 더 많은 기록이다.

장효조는 전문가 투표에서 144표(73.85점), 팬 투표에서 490,154표(8.97점)을 얻어 총점수 82.82로 40명 레전드 중 6위에 이름을 올렸다.

80년대 삼성 타선을 장효조가 이끌었다면 삼성 마운드는 KBO리그 최초 100승 투수 김시진이 있었다. 김시진은 장효조 보다 두 살 어렸으나 대구상고와 한양대부터 육군경리단을 거쳐 1983시즌 삼성에 입단해 1988시즌 종료 후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돼 1992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장효조와 함께했다.

김시진은 입단 첫해 17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입단 5년째인 1987시즌 KBO리그 최초로 100승 투수 반열에 올랐다. 김시진이 100승까지 등판한 경기는 186경기로,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최소 경기 100승 기록으로 남아있다.

김시진의 커리어 하이 시즌은 삼성이 전후기 통합 우승을 이뤄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던 1985시즌으로, 김시진은 25승(역대 단일 시즌 최다승 공동 3위)으로 승리 1위, 201탈삼진으로 이 부문 1위, 승률 0.833으로 이 부문 공동 1위에 오르며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 시즌 김시즌은 무료 269⅔이닝을 소화하며 10세이브를 기록해 세이브 부문에서도 2위에 올랐다. 김시진은 롯데로 트레이드돼 등판한 첫 경기인 1989년 4월 14일 OB 베어스전서 14이닝 동안 219개를 던지는 동안 1실점만 내주고 완투승을 거뒀고, 이는 지금까지도 최다 투구 이닝 승리 공동 1위와 최다 투구 승리 1위 기록으로 남아있다.

김시진은 전문가 투표에서 115표(58.97점), 팬 투표에서 401,640표(7.35점)을 획득해 총점수 66.33으로 20위에 올랐다.

당시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8회 터뜨린 역전 스리런포로 해결사 역할을 했던 한대화는 프로에서도 그 역할을 이어갔다. OB에 입단해 3년간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하던 한대화는 1986년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된 첫해 승리 타점 1위(16개)에 오르며 '해태 왕조' 주역의 등장을 알렸다.

해태가 4시즌 연속 우승(1986~1989)하는 동안 한대화는 꾸준히 홈런 5위 안에 들면서 중심 타자로 활약했으며, 1990시즌에는 타율과 출루율 1위, 안타, 타점, 득점 부문 2위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해태를 떠나 LG 트윈스가 트레이드된 1994시즌에도 한대화는 타율(0.297)과 타점(67타점) 9위에 오르며 중심 타선에서 활약, 우승 반지를 7개로 늘렸다. 한대화가 보유 중인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8회 수상(1986~1991, 1993~1994)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한대화는 전문가 투표에서 90표(46.15점), 팬 투표에서 493,904표(9.04점)을 받아 총점수 55.20으로 레전드 순위 28위에 자리했다.

일명 '개구리 번트'로 국민 영웅이 된 '그라운드 위 여우' 김재박은 실업리그 7관왕 출신으로 프로 데뷔 이전부터 공수주 3박자를 고루 갖춘 유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1982년 시즌 막판 MBC 청룡에 합류해 3경기에 출전했던 김재박은 사실상 프로 데뷔 첫 시즌인 1983시즌부터 도루 2위(34개), 득점 4위(53개), 안타 6위(108개)에 오르며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당시 기준으로 야구선수로는 고령인 30세에 프로 무대에 데뷔한 탓에 실업리그에서의 명성만큼 압도적인 성적을 내지는 못했으나, 안정적인 수비와 주루 실력을 바탕으로 4년 연속(1983~1987)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KBO리그를 대표하는 간판 유격수로서 자리를 잡았다.

김재박은 전문가 투표에서 81표(41.54점), 팬 투표에서 496,853표(9.10점)를 얻어 총점수 50.63점으로 31번째 레전드로 선정됐다.

레전드로 뽑힌 선수들의 시상식은 레전드들의 전 소속 구단 홈경기에서 개최된다. 장효조와 김시진에 대한 시상은 오는 11일(목) KIA와 삼성의 대구 경기에서 동시에 열리고, 2011년 별세한 장효조를 대신해 그의 가족이 참석할 예정이다.

한대화에 대한 시상은 16(화) SSG 랜더스와 KIA의 광주 경기에서 열리며, 김재박의 시상은 17일(수) 삼성과 LG의 잠실 경기로 예정돼 있다.

40명 레전드와 관련된 특별한 스토리는 KBO의 공식 발표에 맞춰 KBO 홈페이지와 네이버 스포츠의 KBO 40주년 특집 페이지 등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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