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겸양과 지혜의 시간

김재태 편집위원 2022. 8. 8.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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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그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것도 100일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다.

몽테뉴의 삶과 사상을 추적해 《인간의 품격》으로 풀어낸 데이비드 브룩스도 그 책에서 "자신의 결함을 상대로 투쟁을 벌일 때, 겸양은 가장 필용한 덕목이다. 겸양은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자신의 개인적 재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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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김재태 편집위원)

기어이 그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것도 100일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이 연이어 20%대로 추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대통령 개인뿐만 아니라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들에게도 매우 좋지 않은 소식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의 반응은 심드렁하기만 하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말이 마치 녹음돼 있던 것처럼 반복해 나온다. 여전히 큰 긴장감은 없어 보인다.

대통령 지지율 추락을 두고 가장 많이 제기되는 것은 '윤석열 자신 책임론'이다. 대통령 스스로가 화를 불렀다는 평가다. 특히 잦은 실수 혹은 잘못된 언행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인사 문제에 대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서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나"라고 답하거나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라는 말을 불쑥 꺼낸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그 외에도 '도어스테핑'이라고 불리는 출근길 문답이나 여러 경로를 통해 논란을 부를 만한 말들이 자주 나왔다. 한 외국 매체의 기사에서 지적된 것처럼 △북한 미사일 발사 다음 날 나온 음주 의혹 △코로나19 대응 필요성이 큰 상황에서 머드 축제에 참석한 일 △나토 정상회의 당시의 외부 인사 동행 등도 지지율 추락에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하지만 엄밀히 따져 이 모든 행위는 실수로 간단히 치부되기 어려운 것들이다. '실수'란 사전적 의미로 '조심하지 아니하여 잘못함. 또는 그런 행위'인데, 윤 대통령의 언행은 단지 실수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는 얘기다. 실수보다는 부적절한(혹은 초점이 잘못 맞춰진) 행위였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실수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돌출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지만 윤 대통령의 언행은 어쩌다 잘못해 나온 것이 아니라 평소의 부적절한 인식이 그대로 표출된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도 윤 대통령은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그 의지가 진심으로 들리게 하려면 무엇보다 겸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모든 부적절함은 성급함이 앞섰을 때 나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급한 마음을 다잡고 좀 더 넒고 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역대 정권들도 지지율이 떨어지면 지도자가 내놓는 말의 알맹이를 바꾸고, 태도를 바꾸고, 더 나아가 정책을 바꿔 국민 속으로 몸을 낮추면서 난국에 대처했다.

이처럼 어려운 국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휴가를 내 '푹 쉬는'(대통령실 표현) 쪽을 택했다. 누구 말마따나 대통령도 사람이고, 그런 만큼 대통령이라고 해서 휴가를 못 갈 이유는 없다. 오히려 지금과 같이 힘든 시기에 갖는 '브레이크 타임'이 좋은 보약이 될지도 모른다. 프랑스 문인이자 철학자인 미셸 몽테뉴는 "다른 사람의 지식으로 지식인이 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지혜로는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 몽테뉴도 자신의 결함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었음을 그가 남긴 저술들은 말해 준다. 몽테뉴의 삶과 사상을 추적해 《인간의 품격》으로 풀어낸 데이비드 브룩스도 그 책에서 "자신의 결함을 상대로 투쟁을 벌일 때, 겸양은 가장 필용한 덕목이다. 겸양은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자신의 개인적 재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휴가를 떠나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된 윤 대통령이 그 금쪽같은 시간에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찬찬히 돌이켜보고 겸양과 지혜를 가득 채워서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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