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우리의 기사가 어떤 씨앗이 될 때

차형석 편집국장 2022. 8. 8.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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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만도 하다.

그럴 때마다 회사 선배들은 "네 마음은 알겠지만 기사는 건조하게 써라"라고 조언했다.

9~10년 전 기사가, 지금 다시 어떤 변화의 씨앗이 되었다.

우리가 쓴 기사가 어떤 씨앗이 되는 걸 목격할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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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전라북도 군산시 칠성길에서 배전 노동자 최낙규 씨가 승주작업(전신주를 올라가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김흥구

8월3일 밤 9시47분, 〈시사IN〉 팀장들의 단톡방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시사IN〉 독자 배춘환씨가 2013년 말에 〈시사IN〉 편집국으로 보낸 ‘크리스마스카드와 4만7000원’ 사진이 뉴스 화면에 띄워져 있었다. 정치권의 ‘노란봉투법’ 입법 움직임을 다룬 KBS 뉴스 화면을 캡처한 것이었다. 다음 날 오전에 다른 방송사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노란봉투법’ 기획기사를 준비 중인데, 관련 사진 제공을 요청했다. 그 기자는 ‘노란봉투’가 〈시사IN〉 독자의 편지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시사IN〉 제777호 기사(‘노란봉투법’ 기다리는 4만7547명의 마음)를 보고 처음 알았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지난 편지에서 썼듯이, 나 또한 기억이 가물가물했으니까. 벌써 9~10년 전 일이다. 지난 호에 실린 기사에서 배춘환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다시 이야기가 돼서 너무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겁이 나요. 또다시 희망 고문 10년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이번에도 통과되지 못하면 다음에 다시 주목받을 때까지 많은 노동자들이 손해배상을 당해야 하니까요.” 이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기자는 갈등의 현장에 선다. 가슴 아픈 사연도 접한다. 어떨 때는 취재하다 눈시울이 붉어져 마음을 진정하느라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회사 선배들은 “네 마음은 알겠지만 기사는 건조하게 써라”라고 조언했다. 감정의 물기를 걷어낸 문장이 때로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 손배소로 고통받는 노동자의 삶을 다룬 〈시사N〉 기사들이 그랬다.

9~10년 전 기사가, 지금 다시 어떤 변화의 씨앗이 되었다. 어느 언론학 책의 문구를 떠올렸다. 저널리즘은 민주주의와 시민들의 삶이 더 나아지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고. 매주 취재를 하고, 매주 마감을 하면서 이 일이 그저 일상으로 느껴져 느슨해질 때도 있다. 우리가 쓴 기사가 어떤 씨앗이 되는 걸 목격할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든다.

이번 호에 주하은 기자가, 전신주에 올라가서 일하는 ‘승주작업’ 중 벌어진 사망사고를 취재했다.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전신주에서 떨어져 사망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사IN〉이 파악하기에, 최근 5년간 최소 17명이 전신주에서 목숨을 잃었다. 기사에 실린 건조한 사고 일지를 오랫동안 들여다봤다. 970만 개 전신주에 걸린 노동은 왜 이렇게 아슬아슬해야 하는가? 이 기사가 누군가의 삶을 지켜줄 작은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차형석 편집국장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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