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저성과자 해고 지침' 데자뷔..노정 정면충돌 불가피

박태우 입력 2022. 8. 8. 05:05 수정 2022. 8. 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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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국무조정실 '고용·노동분야 규제 혁신' 뜯어보니
경총 문건 판박이..해고 사유·파견 확대 등 못박아
박근혜 정부 때 양대지침 연상..강행 땐 대혼란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7일 <한겨레>가 입수한 국무조정실의 ‘고용·노동 분야 덩어리과제(규제)’는 사실상 경영계가 요구해왔던 ‘노동개혁’ 과제를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기업들을 찾아 노동개혁 추진을 약속한 가운데, 이 내용이 ‘규제혁신’이라는 명분으로 그대로 추진될 경우 큰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해고 사유 확대, 취업규칙 변경 쉽게

국무조정실이 고용노동부와 국책연구기관에 내려보낸 ‘덩어리과제’ 목록에는 ‘해고 사유 확대’와 ‘취업규칙 변경 절차 개선’이 포함됐다. 이 둘은 경영계가 “고용경직성을 완화해야 한다”며 줄기차게 요구해온 ‘노동개혁 과제’ 가운데 하나다.

<한겨레>는 국무조정실 덩어리과제의 구체적인 내용을 추정해볼 수 있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신(新) 정부에 바라는 노동개혁 방안’(3월24일, 이하 ‘경총 문건’)을 추가로 확보했다. 이를 보면 “해고 사유는 계속 고용을 기대할 수 없는 근로자의 일신상의 사유, 행태상의 사유로 명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적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선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하지 못한다’고 제한한다. 이에 따라 법원은 “사회 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노동자에게 책임이 있는 경우”로 ‘정당한 이유’를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 경총은 취업규칙 변경 절차 개선과 관련해서도 “사회 통념상 합리적인 경우 집단적 동의 요건을 적용하지 않고 의견 청취로 갈음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경우 과반수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구하도록’ 한 것을 완화하자는 얘기다.

경영계의 이런 요구를 반영한 정책은 박근혜 정부 시절 ‘양대지침’이라는 가이드라인 형태로 시행됐다가 문재인 정부 때 폐기된 바 있다. 양대지침은 2016년 1월 발표된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을 일컫는다. 공정인사 지침은 저성과자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은 임금체계와 근로시간 등 노동조건을 기업이 쉽게 변경할 수 있게 했다. 양대지침 추진은 노동계의 극심한 반발을 불렀고,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대타협 이후 17년 만에 한국노총의 참여로 이뤄진 2015년 ‘9·15 노사정 대타협’(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이 폐기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세계 노동자의 날인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 버들다리(전태일다리)에서 해고금지, 비정규직 없는 세상 2021 비정규직 행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co.kr

기간제·파견 범위 확대

국무조정실 덩어리과제에 담긴 ‘기간제·파견 활용범위 확대’도 경영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것 중 하나다. 이와 관련된 경총 문건에는 “파견 업무 허용 규제 방식을 현행 포지티브 리스트(파견 허용 업무를 명시) 방식에서 네거티브 리스트(파견 불가 업무 이외에 모두 허용)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직접 생산공정에 파견을 허용하는 등 파견 허용 업무 확대”를 요청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근로계약 과정에서 중간 착취를 막기 위해 파견 허용 업종에만 노동자 파견을 허용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직접고용 의무를 부과한다. 기업들은 파견 업종을 늘려 직접고용 의무를 회피하는 대신, 싼값에 노동자를 사용하기 위해 이런 건의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조 권리 대폭 제한

덩어리과제 중에는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를 대폭 위축시키는 내용도 포함돼, 실제 추진된다면 노동계와 큰 충돌도 불가피해 보인다.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조항 삭제 △파업 때 대체근로 금지조항 개선 △노조의 사업장 점거 전면금지 신설 등도 경영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내용이다. 2018년 11월~2019년 3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개정 논의 때도 노사 간 견해차가 워낙 커 합의에 이르지 못한 사안이다.

더욱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조항의 경우 지난 5월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한 바 있다. 경영계는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제도(부당노동행위로 인해 권리를 침해당한 노동자·노조의 구제 신청)가 존재하는데 형사처벌까지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헌재는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제도와 달리 부당노동행위를 사전에 예방하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로부터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입법 목적 등에 비춰 부당노동행위 처벌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노조의 사업장 점거 또한 대법원 판례에서 ‘부분적·병존적 점거’는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또 전면금지가 추진되면 노조법이 규정하는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인 쟁의행위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노조 파업 때 대체근로 허용도 마찬가지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국무조정실이 경영계의 무리한 요구를 그대로 정책 추진 과제로 옮겨 온 걸 보면, 노동 분야의 정책적 전문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노사 간에 아예 논의 자체가 이뤄질 수 없는 사안을 규제완화 대상으로 추진하게 되면, 현 정부에 부담을 지우고 극심한 혼란만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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