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었던 자우너..엄마 나라 축제서도 끝내 눈물

고경석 입력 2022. 8. 8. 04:31 수정 2022. 8. 8.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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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포트록페스티벌서 공연한 한국계 미국 싱어송라이터 미셸 자우너
미국 인디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를 이끄는 싱어송라이터 겸 작가 미셸 자우너가 6일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펜타포트록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있다. 밴드 이름은 어감이 좋아서 별 의미 없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펜타포트록페스티벌 제공

“포(for) 엄마.”
6일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펜타포트 무대. 미국 인디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를 이끄는 미셸 자우너(33)의 짧은 곡 소개에 이어 무대 뒤편 대형
스크린에는 어린 자우너와 젊을 적 어머니의 색 바랜 사진이 이어졌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우너는 공연 중 끝내 눈물을 보였다. 객석에선 “울지 마! 울지 마!” 하는 응원이 들렸다. 자우너가 부른 ‘더 보디 이즈 어 블레이드(The Body Is a Blade)‘는 어머니를 떠나 보낸 뒤 트라우마와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곡이다.
“이 곡을 연주하며 운 건 처음이에요. 스크린에 엄마 영상이 나오는 데다
‘당신이 여기 없다면 이곳은 무엇인 걸까(What’s this place if you’re not here)’라는 가사를 부르는 순간 주체할 수 없더라고요. 한국은 엄마가 살던 곳이잖아요. 제가 이렇게 많은 관객들 앞에서 연주하는 걸 봤다면 얼마나 행복해하셨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날 공연을 마친 뒤 무대 뒤에서 만난 자우너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한국 공연은 2017년, 2019년 이후 이번이 세 번째. 음악 축제 공연은 처음이다. 그는 “아시아 관객은 미국 관객에 비해 조용하고 차분하다고 하는데 한국 관객은 미국 관객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호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미국 인디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를 이끄는 싱어송라이터 겸 작가 미셸 자우너가 6일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펜타포트록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있다. 펜타포트록페스티벌 제공

자우너는 국내에서 작가로 더 유명하다. 한국인 어머니에 대한 진한 사랑을 담은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는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거의 1년 내내 올랐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추천으로도 화제를 모았고 국내에도 출간돼 많은 독자를 울렸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에서 그는 엄마와 함께 먹던 총각김치, 바싹 구운 삼겹살, 혀 안에서 사르르 녹던 뻥튀기를 통해 엄마를 추억한다.
책에서 자세히 썼듯 한국 음식은 그와 어머니, 한국을 잇는 중요한 매개체다.
이번 한국 공연에 와서 먹은 첫 한식 조식, ‘코리아 브렉퍼스트’도 김치찌개였다고 한다. ‘만약 3주 동안 김치찌개 말고는 다른 음식이 생각나지 않으면, 딴 음식이 생각날 때까지 허구한 날 김치찌개만 만들어 먹었다’고 썼던 그 김치찌개다. “엄마는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하셨어요. 음식이 제 삶의 중요한 부분일 수밖에요. 한국과 저를 아주아주 가깝게 이어주는 것이기도 하죠. 오래도록 한국 음식을 먹지 않으면 위가 불편할 정도예요. 우리 모두 생물학적으로 위에서 느끼잖아요.”
서울에서 태어난 자우너는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아시아계가 흔치 않은
오리건에서 자랐다. 로컬밴드 리틀 빅 리그에서 활동하다 2016년 데뷔 앨범을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지난해 발표한 세 번째 앨범 ‘주빌리(Jubilee)’는 미국 그래미 후보에도 올랐다. “전 미국에서도 아웃사이더이고 한국에서도 섞이지 못하죠. 그 점이 저만의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했고 그 공간을 저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었어요. 창작자에게 대단한 선물입니다. 제 작품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 줄 때 더 이상 아웃사이더가 아니란 걸 느끼게 됩니다.“
일부 K팝 외에 한국 고전 가요를 잘 알지 못했던 그는 두 차례 한국 공연을
하고 서울에서 장기간 머물며 신중현, 김정미, 바니걸스 등 옛 가요의 매력에 눈을 떴다. 어머니와 이모가 노래방에서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잔’(신중현 작곡)을 자주 불렀다는 점과도 맥이 닿는다. 한국 팬들을 위해 특별히 한국어로 부른 3집 수록곡 '비 스위트(Be Sweet)’에는 바니걸스의 곡 ‘부메랑’의 영향이 일부 담겨 있다. “처음 한국 공연 왔을 때 홍대 앞 '곱창전골'(홍대 앞 음악 바)에서 들었는데 인상에 남았어요. 프로듀서에게 이 곡을 들려주고 베이스 라인을 참고했죠. 그때 신중현의 음악도 들었는데 그런 음악은 이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해서 무척이나 감명 깊었어요. 가사는 모르지만 아주 기억에 남았죠.”

미국 인디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를 이끄는 싱어송라이터 겸 작가 미셸 자우너가 6일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펜타포트록페스티벌에서 두 팔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펜타포트록페스티벌 제공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과 슬픔을 담은 두 장의 앨범과 에세이로 ‘1막’을 마친 그는 기념일, 기념 축제를 의미하는 제목의 ‘주빌리’와 함께 2막을 열고 있다. 영화로 제작될 예정인 ‘H마트에서 울다’의 시나리오와 음악도 맡을 계획이다. “1년 정도 한국에 머물며 한국어도 배우고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기록해서 책으로 내려고요. 엄마가 ‘한국에서 1년만 살면 모든 것이 있는 편의점처럼 다채로워질 것’이라고 하셨거든요. 제 한국어는 두 살짜리 아이 수준인데, 한국어를 배워서 큰 이모(성우 이나미)와도 자유롭게 대화하고 싶어요.”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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