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김동인의 '감자'에는 감자가 안 나온다
우리의 대표적 서민 먹거리인 고구마는 많은 한국인에게 ‘추억의 음식’으로도 꼽힌다. 하지만 무척 토속적인 느낌과 달리 ‘고구마’는 우리 고유어가 아니다. 일본 쓰시마섬의 사투리 ‘고코이모’를 그 어원으로 본다.
고구마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해졌을 때는 ‘감자’와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 고구마가 감자로도 불린 사실은 김동인의 소설 ‘감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복녀는 ‘가을’에 왕서방네 채마밭에서 감자를 서리하다 들킨다. 지역에 따라 ‘가을 감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감자는 보통 여름에 수확해 가을까지 주린 배를 채워주던 작물이다. 반면 고구마는 가을에 캐 겨우내 먹는다. 우리의 추억 속 고구마도 추운 겨울에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던 그것이다. 김동인도 처음 소설을 발표한 1925년에는 복녀가 훔친 것을 ‘감자’로만 적었지만, 새롭게 단행본을 낸 1935년 판에서는 ‘감자(고구마)’로 표기해 복녀가 도둑질한 것이 고구마임을 분명히 했다.
우리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비슷한 이름으로 부른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예를 들어 영어권에서 감자를 ‘포테이토’(potato)라 하고, 고구마는 ‘sweet potato’(달콤한 감자)’라고 한다.
이런 고구마는 알뿌리뿐 아니라 ‘줄기’를 나물로 해서 먹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먹는 것은 엄밀히 말해 줄기가 아니다. 고구마 줄기는 너무 억세서 사람은 먹지 못한다. 나물로 만들어 먹는 부드러운 부분은 잎에 연결된 잎자루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나없이 이를 ‘고구마줄기’로 부르다 보니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은 ‘고구마줄기’를 “고구마에서 돋아나온 연한 싹. 이것의 껍질을 벗겨 나물을 해 먹는다”고 풀이해 놓았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고구마에서 돋아나온 연한 싹”을 뜻하는 말로 ‘고구마순’이 등재돼 있다. 이때의 ‘순’은 “나무의 가지나 풀의 줄기에서 새로 돋아나온 연한 싹”을 뜻한다. 결국 현재 ‘고구마줄기’가 많이 쓰이고 있기는 하지만, 표준어는 ‘고구마순’이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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