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헤어질 결심

김진우 기자 2022. 8. 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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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변하기 어렵다는 말들도 한다. 심리학에선 과거의 선택이 관성 때문에 쉽게 변하지 못하는 현상을 ‘경로의존’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잡아먹히지 말아야 한다는 절박함은 혁신을 강제하는 원동력이다. 최근 EBS TV에서 방영된 <강제혁신 2-경쟁하는 권력>은 15세기 화약 혁명 이후 동서양의 군사적 우열이 뒤집힌 이유를 바로 그 위기의식이 불러온 강제혁신에서 찾는다.

김진우 정치부장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20%대 중반으로 주저앉았다. 한국갤럽의 8월 첫째주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24%. 7월 마지막주 여론조사(28%)에서 30%선이 무너진 데 이어 한 주 만에 또 최저치를 깼다.

취임 100일도 되지 않은 대통령 지지율이 20%대 중반으로 곤두박질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명박 정부 때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파동처럼 정권이 흔들릴 만한 대형 악재도 없었다. 잔매에 골병든다고, 취임 당시 52%였던 지지율이 슬금슬금 떨어져 20%선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까지 왔다. 윤 대통령이 임기 5년 동안 하려는 게 무엇이든 여론의 지지 없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비상한 상황이라 할 만하다. 앞서 대통령실 관계자는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내홍에 대해 “당이 조속히 정상화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당의 현 상황을 ‘비상상황’으로 규정했다. 여권 난맥상은 대통령 책임도 적지 않다. 유체이탈식 화법을 할 때가 아니다.

윤 대통령 지지율 추락은 한두 가지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 검찰 출신 측근 중용, 만취운전·표절 의혹 장관 임명 등 인사 논란은 20% 이상이 부정평가 응답 이유로 들어 1위에 올라 있다는 점만 밝혀두자. 이외에도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설치와 초등학교 취학연령 5세 하향 등 졸속 정책 추진, 사적 채용 논란, 김건희 여사 관련 잡음, 사정 정국 조성 등 여러 원인이 겹쳤다.

분명한 것은 지지율 추락이 윤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이 자초한 면이 크다는 점이다. 문제에 대수롭지 않게 접근하거나 적반하장식 태도로 비판 여론에 불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윤 대통령이 인사 논란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전 정권보다 낫다’는 답변을 내놓은 게 대표적이다. 정작 인사 실패나 ‘내부총질’ 문자메시지 파동 등에 대해선 제대로 된 해명이나 사과가 없었다. 윤 대통령 지인 아들의 대통령실 채용 논란에는 ‘9급 공무원 정도 시킨 게 그렇게 잘못이냐’는 식으로 대응했다. 김건희 여사가 코바나컨텐츠를 운영할 당시 거래했던 업체가 대통령 관저 공사 일부를 맡은 것도 구설을 자초한 일이다.

결국 지지율 위기의 진원지는 윤 대통령 본인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고 위기, 코로나19 재유행 등으로 나라 안팎으로 할 일이 많을 때 대통령은 ‘당대표 내부총질’ 운운하면서 ‘체리따봉’ 이모티콘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보냈다. 초등학교 취학연령 5세 하향 등 예민한 정책을 밀어붙였다가 여론의 반발을 부른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다. 잇달아 불거지는 김건희 여사 관련 문제나 사적 채용 논란은 대통령실 내부 자정 능력을 의심하게 한다. 이런데도 시민들이 대통령과 정부에 신뢰를 보낼 수 있겠나.

갤럽 조사에선 긍정평가 이유로 ‘공정·정의·원칙’을 꼽은 비율이 3%로, 전주보다 6%포인트 하락했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워온 윤 대통령이 불공정과 몰상식을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부정평가 이유로 ‘독단적·일방적’(8%), ‘소통 부족’(7%)이 꾸준히 거론되는 등 독선의 이미지도 강화하고 있다.

대통령 스스로 갉아먹은 신뢰의 위기는 리더십의 위기를 가져온다. 한번 잃어버린 신뢰는 쉽게 회복하기 어렵다. ‘공무원 시험은 권성동!’이라는 동영상 밈과 ‘체리따봉’ 이모티콘이 유행하는 등 여권 인사들의 언행이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휴가에서 복귀한 윤 대통령은 8일 출근길 문답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내부총질’ 문자메시지 파문 이후 2주 만에 언론 앞에 서는 만큼 어느 때보다 이목이 쏠린다. 윤 대통령이 비판 여론을 수용해 인적·정책적 쇄신 의지를 밝힐지, “야당의 악의적 프레임 공격 영향”이라는 시민사회수석의 말처럼, “지지율 1%가 나와도 바로잡을 건 바로잡겠다”고 했다는 언론 보도처럼 ‘마이웨이’를 갈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쉽지 않은 법이다. 윤 대통령이 누구와 ‘헤어질 결심’을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김진우 정치부장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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