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권의 손길] 발달장애인도 대한민국 유권자다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2022. 8.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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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보조인 없애 선거 어렵고
‘합리적으로 투표할 능력 있을까’
그들에 대한 불온한 시선도 문제
실질적으로 선거권 없는 시민
발달장애인이 마주한 현실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우영우)가 화제다. 자폐성 장애가 이만큼 사회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을까? 모두가 우영우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아끼는 듯하다. 드라마의 폭발적 인기를 따라 자폐성 장애를 비롯한 관련 발달장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듯하여 무척이나 반갑다.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그런데 드라마가 현실의 반영이라지만 드라마는 드라마다. 드라마 밖의 발달장애는 때론 전혀 생각지 못한 사회적 편견과 마주한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인에게도 선거권을 줘야 하는가’와 같은 매우 근본적인 문제다. 신체적으로 스스로 투표를 할 수 없는 발달장애인이 많은 데다, 발달장애인에게 합리적으로 투표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을 품는 사회적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당수 발달장애인은 선거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보조를 받아야 한다. 풀어서 말하자면 옆에서 투표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간단한 사안처럼 보이지만 투표보조는 직접 및 비밀 투표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에 법으로 규정되어 실시된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2016년 국회의원 선거부터 발달장애인들이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일어났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직선거법을 내세워 발달장애인의 투표보조를 가로막은 것이다. 공직선거법 157조 6항은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하여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하여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관위는 발달장애인이 시각 및 신체 장애인이 아니기에 투표보조를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금 뜻밖인 건 선관위가 발달장애를 마치 신체와 무관하게 영혼에 이상이 있어 생겨난 장애처럼 간주했다는 것이다. 이미 국내외 여러 연구진이 발달장애와 관련된 유전자 후보들을 밝혀내 왔다. 우리 신체와 정신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뿐 아니다. 157조 6항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된 ‘시각 및 신체의 장애’는 혼자서는 선거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의 대표적 유형으로 보는 게 바람직하다. 공직선거법을 만드는 이들이 장애 전문가가 아닌 한 선거법에 투표보조가 필요한 모든 유형의 장애를 나열할 수는 없다. 우리 헌법 역시 37조 1항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법이 권리와 관련해 모든 사안을 나열하는 일이 가능치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선거권이 민주정체 구성원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헌법기관으로서 선관위의 해석은 무척 아쉽다. 기본권 관련 해석은 권리를 제한하는 방향보다는 확장하고 증폭하는 방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권은 출생과 더불어 민주정체에서 시민권을 갖게 되는 모든 구성원에게 똑같이 부여되는 것이기 때문에, 법이 아주 예외적으로 배제 대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면 투표의 권리가 부여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불어 ‘투표보조’와 관련하여 재판에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질문이 ‘투표보조인의 영향을 벗어나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투표할 수 있는가’라고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발달장애인이 현실적으로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이 질문엔 심각한 오류가 있다.

민주사회에서 기본권은 모든 구성원이 현실에서 그 권리를 합리적으로 행사하기에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정체는 구성원들의 ‘자기의사결정능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현장에서 검증할 수 있는 실체적 능력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기반의 실체는 민주정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누구나 자기결정을 할 수 있다는 민주적 신념이다. 국민 기본권이 누군가에게 특정한 ‘실체적 능력’이 있어서 부여되는 것이라면 능력에 대한 측정 없이 출생에 따라 부여되는 시민권은 그 자체가 부당한 권리가 될 것이다.

민주정체에서 권리 부여는 긍정적 상황을 전제하고 그 잠재력을 믿고 하는 것이지, 현실에서 모든 구성원이 그렇게 한다고 확인되어서가 아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공익보다 사익 중심으로 평생 투표할 수 있으며, 여러 경로로 타인의 의사에 쉽사리 좌우되기도 하며, 심지어 여러 역사적 사례가 보여주듯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투표할 수도 있다. 이렇듯 비발달장애인에게 묻지 않는, ‘합리적으로 투표할 실체적 능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발달장애인에게 하는 건 합리적이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선거권 없는 시민, 자기 삶의 결정을 남의 손에 맡긴 존재를 시민이라 부를 수 있을까? 20만 발달장애인이 마주한 현실이다.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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