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누가 스포츠 비정상화를 부추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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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동떨어진 정책 내세운 교육부가 비정상화 주범이다
지난달 유신고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청룡기 고교야구선수권 대회를 지켜보곤 깜짝 놀랐다. 각 팀 에이스급 투수들 대부분 140km대 빠른 볼을 던지는 건 기본, 프로에서도 드문 150km 중·후반대 공을 씽씽 뿌려대는 투수도 보였다. 몇 년 전만 해도 고교 무대에서는 130km 후반대만 던져도 ‘빠른 볼’ 투수로 대접받곤 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 종종 150km대를 밥 먹듯 던지는 ‘괴물’ 투수가 출현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부러워하던 게 엊그제 같다. 국내 고교 선수들의 볼이 어떻게 이렇게 빨라진 걸까? 궁금증은 함께 경기 보던 야구인의 한마디에 금세 풀렸다.
“요즘 고교 선수들, 대부분 사설 아카데미에서 야구 따로 배워요.”
야구계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은퇴한 프로 출신 선수들이 주로 운영하는 아카데미가 수도권에만 100곳이 훨씬 넘는다. 제법 규모가 큰 곳은 일선 학교는 엄두도 못 낼 초고가 첨단 장비로 무장하고, 일대일 맞춤 레슨으로 선수들의 기량을 짧은 시간에 끌어올린다. 이른바 ‘족집게 속성 야구 과외’인 셈이다. 한 달 수강비가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르지만 자식이 프로, 대학 갈 수 있다는 말 한마디에 학부모들 지갑이 자동문처럼 쓱 열린다. 진학률 좋기로 입소문 난 곳은 강남 대치동 유명 학원처럼 문전성시를 이룬다.
야구 아카데미가 급증한 시기는 2019년. 공교롭게 지도자 폭력 등 스포츠계의 곪은 상처들이 이곳저곳에서 터지자 교육부가 문체부, 학계 등과 수십 차례 논의한 끝에 내놓은 학교 스포츠 정상화 권고안과 시기와 맞물린다. 당시 교육부는 학생 선수 학습권 보장이란 원칙 아래 대회 및 훈련 참가로 인한 학생 선수들의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해 주던 기간을 줄였다. 고교 기준으로 학교장 허가 아래 수업의 3분의 1 범위(63~64일)였던 출석 인정 일수가 2020년 40일, 2021년 30일, 올해 25일이 됐다. 학생 선수들은 학교 수업 의무화로 훈련 시간과 연습량이 크게 줄자 대안으로 사설 아카데미에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 체육을 정상화하겠다고 내놓은 대책이 오히려 비정상화를 부추긴 사례는 여럿 더 있다. 탁구 신동으로 알려진 신유빈을 비롯해 많은 어린 선수들이 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중학교 졸업 후 고교 진학을 아예 포기했다. 방학 때만 대회 출전을 허용하도록 한 규정 등으로 국제대회 출전에 큰 제약을 받고, 실력도 끌어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학 스포츠 입학 비리를 근절한다는 이유로 일선 지도자들이 입학 사정에 개입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코미디 같다. 단체종목은 당시 팀에 필요한 포지션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데, 부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이유로 지도자들을 배제하니 일부 대학에서는 스포츠 팀을 운영해보지도 않은 몇몇 교수가 전국대회 성적표만 놓고 입학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권고안이 나왔을 당시 현장에선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며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학생 일대일 멘토제라든가 일정 성적 미달 시 출전 금지라는 현실적인 대책이 있었음에도 정부는 들은 체 만 체했다. 그래서 체육계에 입김이 강한 여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눈치를 봤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스포츠혁신안 전면 재검토 공약을 내세웠지만, 전혀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요즘 교육부의 수난 시대다. 만 5세 조기 입학 학제 개편안, 외고 폐지 등 정책을 사회적 여론 수렴 없이 내놨다가 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곧 한 발짝 물러나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뜨렸다. 문제를 자신이 아니라 당사자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지금처럼 욕먹는 일이 확 줄어들 것이다. 한 번 내건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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