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82] 숲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2022. 8. 8.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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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이 흔들리면

나무 셋도 흔들린다

이렇게 이렇게

나무 하나의 꿈은

나무 둘의 꿈(…)

나무 하나가 고개를 젓는다(…)

나무 둘도 고개를 젓는다(…)

아무도 없이

나무들이 흔들리고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이렇게

함께

-강은교(姜恩喬·1946~)

‘이렇게’를 넣은 것이 신의 한 수. 시의 방관자였던 독자들이 ‘이렇게’를 보며 적극적인 행위자로 동참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나무들이 흔들리는 숲에서 나도 따라 흔들리는 것처럼, 내가 나무 넷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하는 착시. 이것이 시인의 능력이며 리얼리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가서 우리 함께 싸우자! 라고 외치지는 않지만 1970년대와 1980년대 군부독재에 맞서 항거했던 이 나라 풀뿌리 민초들의 저항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시다. 존재와 존재의 관계를 탐구하는 모양새가 어딘지 불교 철학과 닿아 있다. 시인도 그렇게 흔들리며 고개를 젓던 나무의 하나였기에 이렇게 빼어난 작품이 나오지 않았나. 이 시에 나무들을 흔들리게 하는 ‘바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시를 한 줄 한 줄 베끼다 보면 예전에 모르던 시의 묘미를 발견하게 된다.

*

숲 (시 원문)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이 흔들리면

나무 셋도 흔들린다

이렇게 이렇게

나무 하나의 꿈은

나무 둘의 꿈

나무 둘의 꿈은

나무 셋의 꿈

나무 하나가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둘도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셋도 고개를 젓는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이

나무들이 흔들리고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이렇게

함께

-강은교(姜恩喬·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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