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59] 화개 골짜기의 목압서사(木鴨書舍)
그래도 영남에 양반 문화가 아직 남아 있다. 다른 지역은 거의 사라졌는데 말이다. 양반의 유풍은 이렇다. 한적(漢籍)에 관심이 많다. 조상의 문집을 번역하려고 회사 퇴직금이라도 일부 밀어 넣는다. 문중과 집안에 대한 연대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다. 집안 욕먹는 처신은 되도록 안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서 약간의 손해는 감수하려는 태도가 있다.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약속은 될 수 있으면 지키려고 노력한다. 신뢰를 못 지키면 양반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약속을 할 때도 신중하게 정한다. 허교(許交)라고 하는 검증 기간을 거쳐서 마음의 문을 열지, 단 기간 내에 곧 바로 ‘형님,동생’ 별로 안 하는 경향이 있다.
하동군 화개 골짜기에 목압서사(木鴨書舍)가 있다. 한문 서당이었다. 부산에서 직장 생활하다가 정년하고 화개로 귀촌해서 사는 조해훈(62) 선생이 무료로 운영하는 서당이었다. 귀촌해서 한가하게 살지 웬 서당을 운영하나?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돈도 안 되는 일에 정력을 쓰면서 한문 공부하는 우직한 사람들을 보면 그 출신 성분이 대강 짐작되는 바가 있다. “고향이 영남 어디요?” “대구 달성군 논공읍 갈실[蘆谷]마을의 함안 조씨요. 단종 때 벼슬을 버리고 함안에 내려왔던 인물인 조려(趙旅)의 후손들로서 대대로 학문을 중시했던 집안이오. 문과 급제자도 34명을 배출했으니 책 보고 공부하는 게 우리 집안 전통이오.” “왜 하필 지리산 화개 골짜기로 귀촌을 한 거요?” “조부 때부터의 꿈이 화개에 들어와 서당 열고 공부하면서 화개차(茶)를 덖어서 마시는 일이었기 때문이오. 조부, 아버지가 못 이룬 꿈을 내 대에 와서 이룬 셈이죠.”
조부인 조차백(趙且伯·1890~1963)도 차를 좋아해서 매년 4월이 되면 고향 달성에서 지리산 쌍계사까지 와서 한 달간 머무르며 집안 사람들이 마실 차를 만들곤 했다. 당시 쌍계사에는 중국에서 덖음차 제조 기술을 배워온 청파(靑波) 조병곤(趙秉坤)이 머물고 있어서 이 양반한테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아버지 조길남도 할아버지 따라서 유년 시절부터 찻잎 따는 계절이 오면 쌍계사에 머무르곤 하였다. 빚보증 때문에 부산 단칸방에 사는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청학동이 가까운 화개 골짜기의 낭만적인 풍광과 차를 잊지 못하고 죽었다. 목압은 신라시대 나무 오리를 날려 절터를 잡았던 목압사(木鴨寺)가 있었던 절터였다. 조부, 아버지의 꿈을 대신해서 산골짜기에 서당을 열고 차를 만들며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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