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서 '한산대첩' 있던 날, 육지에선 '웅치전투' 있었다

박용근 기자 입력 2022. 8. 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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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군 1만 전주 진격 막은 격전지
순국선열 '430주기 기념식' 열어
영화 '한산'에 나오며 재조명
지난 5일 전북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웅치고개에서 열린 ‘430주기 웅치전투 기념식’에서 한 무용수가 헌무를 하고 있다. 완주군 제공

영화 <한산-용의 출현>은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 앞바다에서 있었던 한산대첩을 장엄한 스케일로 그려낸다. 그런데 이 영화의 한 장면에 웅치전투가 나온다. 1592년 음력 7월8일, 바다에선 한산대첩이 있었다면 육지에선 의병들이 관군과 합세해 왜군과 싸운 ‘육상의 한산대첩’ 웅치전투가 전개되고 있었다.

한산대첩과 웅치전투가 벌어진 지 430년이 흐른 지난 5일 전북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웅치고개에서 산화한 선인들의 넋을 위로하고 민족자존을 되새기기 위한 ‘제430주기 웅치전투 기념식’이 열렸다. 해마다 치러진 기념식이지만 영화 <한산>이 웅치전투를 재조명하면서 이날 기념은 의미를 더 각인시켰다.

진혼곡 연주와 조총 발사, 헌화와 분향, 유족 대표 인사, 헌시와 헌무, 웅치의 노래 등으로 이어진 기념식에는 각계에서 10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당시 왜군과 끝까지 맞서 싸웠던 의병장들의 후손들도 참석해 숙연함을 더했다.

유희태 완주군수는 이날 “해상에 한산대첩이 있을 때 육상에서는 웅치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며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 일상과 대한민국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군수는 “그동안 웅치전적지를 사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전북도에서 문화재청에 지난 7월 사적 지정을 신청해 심의 중인데 문화재청 의견에 따라 문화재구역을 보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병장인 황박 장군과 정협 장군의 후손인 황석규씨와 정완철씨는 “웅치전투의 항전이 임진왜란 초기 호남 방어에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었다”며 “웅치전적지를 사적으로 추진해 민족자존의 긍지를 높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웅치전투 당시 왜군 1만여명은 전주 점령을 위해 진안에서 전주로 넘어가는 고개인 웅치를 넘으려 했다. 관군과 의병이 합세한 조선군은 3겹으로 방어진을 치며 육탄 저지했지만 수적 열세에 밀려 패배했다.

학계에서는 웅치전투를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육상에서 최초로 승리한 전주 안덕원전투를 이끌어낸 값진 전과로 평가하고 있다. 적을 무찌르지는 못했지만 전주에서 왜군을 막아낼 시간을 벌어줘 결국 전주성 점령을 단념케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약무호남 시무국가(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라는 말의 기원이 이 전투에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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