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맞으면 참 좋은데..' 논문으로 설명될 날 온다[알아두면 쓸모 있는 한의과학]
임상을 떠나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가끔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에게서 진료를 봐달라는 부탁을 받곤 한다. 입사 초, 아직 한의사 냄새가 가시지 않았을 때 한두 명 체한 사람에게 침을 놓곤 했다. 그런데 이 일이 용하다는 소문으로 퍼졌는지, 체한 환자들이 주로 온다. 20~30분 동안의 침 치료를 통해 증상을 없애고 나면 보통 고맙다는 반응과 함께 이들은 “어떻게 손발에 침을 놓았는데, 체한 것이 내려가죠?”라고 약간의 놀라움이 섞인 궁금함을 보인다. “이게 말이죠. 사람 몸에는 경락을 따라 경혈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게 몸속의 장부들과 연결이 돼서…”로 시작하는 어려운 용어로는 설명이 쉽지 않다.
침이 경험적으로 효과가 있는 반면에 그 효과의 원리를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점 때문인지 이 분야의 연구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최근 10년간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지수)급 국제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이 총 1만2851건으로, 연평균 10.7%의 꾸준한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연구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침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다. 그래서 침이 효능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많은 질환에 대한 임상연구가 활발하다. 최근에는 특히 통증과 신경계 질환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논문들도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앞으로는 “제가 요통이 있는데, 침을 맞으면 괜찮을까요?”와 같은 질문에 답을 내놓기 위해 <동의보감> 등 고전 문헌 대신 최신 임상 논문을 근거로 내세울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으로 기대한다.
두 번째로는 침이 ‘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이다. 많은 기초분야 연구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 분야의 연구 결과는 침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해 준다. 침을 통해 가해지는 외부의 자극이 어떤 경로를 통해 어디로 전달돼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지가 주된 관심사다.
이를 연구하는 것은 매우 다양한 학문 분야와 최신 기술의 도움이 필요하다. 의학, 신경생리학, 내분비학, 해부학, 전자공학, 세포생물학 등 많은 분야의 연구자들이 협력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침 치료와 뇌 반응과의 연관성이 주목받고 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등 뇌 활동을 실시간, 직접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고, 뇌 과학 분야가 괄목하게 성장하면서 침 치료 효과를 뇌 기능에서 찾고자 하는 시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앞선 두 가지 연구들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만족스러울 만큼 성과가 만들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속적인 연구 성과의 축적을 통해 침의 효과를 쉽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그 성과들은 산업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많은 거대 기업이 침의 원리와 거의 유사한 신경 자극 의료기기에 투자하고 있다. 2021년 한 보고서에서는 신경 자극 의료기기를 ‘인체 신경조직에 외부 에너지를 통한 물리적인 자극을 인가해 내부 장기의 기능 조절을 유도하는 방법으로 질병을 치료 또는 경감시키는 기기’라고 정의했다. 앞서 말했던 침의 원리와 거의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다. 침의 원리를 규명해 나간다면 학문적인 성과를 넘어, 의료기기 개발 분야에 새로운 영감을 주게 될 것이다.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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