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만5세 입학 추진과 개혁 조바심

2022. 8. 7.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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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캐나다에서 처음 아이스하키를 시작하는 나이는 대략 5세 전후라고 한다. 5살 남짓 아이들 사이에선 같은 나이라고 하더라도 1~2개월 먼저 태어나면 다른 아이보다도 덩치가 크고 힘도 세다. 초등학교 감독들은 또래 아이들보다 덩치 큰 학생들을 주로 선수로 선발해서 집중 훈련시킨다. 지난 2007년 캐나다 알버타주의 청소년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태어난 달을 조사했더니 1월생~3월생이 전체의 56%였다. 확률로 따지면 분기별로 25%씩 나눠져야 하지만, 1분기생이 다른 분기생보다 월등히 많았다. 이는 1~2개월 먼저 태어남이 힘과 스피드의 차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교육부가 초등학교 입학 나이를 만 5세로 낮추는 학제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학부모와 교육단체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학부모들은 식생활의 개선으로 아이들의 체격은 커졌지만 이에 따른 지적 능력도 발달했다고 볼 수 없다고 우려한다. 여기에는 우리 아이가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 만5세들의 방과 후 돌봄 시설도 간단하지 않다. 만성적인 출생률 저하 상황에서 정부가 오히려 맞벌이 부모들의 부담을 늘리는 정책을 만들었다고 부모들은 하소연한다.

아이들의 입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입학연령 조정은 또 다른 난맥이다. 당초 교육부는 2025년부터 과도기적으로 4년간 입학연령 단위를 15개월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즉, 2025년에 입학 대상은 기존 1년(2018년 1~12월생)에 3개월(2019년 1~3월생)을 추가한다는 발상이다. 이 경우 이들 18년생~22년생까지 학생 수가 다른 해보다 25% 늘어나면서 교사와 교실의 부족, 입시 및 취업 경쟁률 심화 등이 예상된다. 교육부는 12년간 1개월씩만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학부모들의 불만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언제나 앞 정부와 차별화를 도모해왔다. 윤석열 정부는 더욱 그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기고, 민정수석실과 제2부속실 폐지 등 '전 정부와의 차별화'를 전면에 내걸었다. 정부 각 부처의 개혁과 차별화에 대한 조바심도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운전대를 급하게 왼쪽으로 돌렸다면 윤석열 정부는 반대쪽으로 꺾고 있는 셈이다. 만5세 취학 추진 논란도 그 연장선이다.

만5세 초등학교 입학은 대통령의 공약도, 인수위원회 제안도 아니었다. 행정전문가인 박순애 교육부 장관의 아이디어라고 보기 힘들다. 오랫동안 교육부의 서랍 속에서 방치되어온 정책 과제 중 하나였다. 30년 전 김영삼 정부에서 처음 제안된 이래,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도 꾸준히 언급되었으나 추진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를 박 장관이 덥석 물었다. 교육부 인적 쇄신 방안과 함께 추진하는 개혁정책으로 포장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역대 정부에서 추진하지 않았을 때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전임 정부를 모두 비합리적으로 몰아세워서는 안된다. 추진과정에서 생기는 국민들의 불편과 불안에 대한 우려 때문에 주저했을 수도 있다. 정책 결정권자가 엘리트의 합리성과 결단만을 강조하다 보면 평범한 이웃의 눈높이와는 거리를 갖게 된다.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율이 최근 20%대로 떨어진 것은 어쩌면 지나친 합리성에 대한 강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박순애 장관은 "국민이 원치 않으면 폐기될 수 있다"고 한발 물러섰으나 이미 회복하기 힘든 신뢰의 상처를 입었다.

아이스하키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지난 2000년~2010년까지 아이스하키 프로리그(NHL)에 뛰고 있는 캐나다 출신 선수 1177명의 태어난 달을 조사했더니 1분기 생은 29%에 그쳤다. 또한 올림픽 금메달을 땄던 2010년 캐나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경우 1분기 생은 13%에 불과했다. 아마추어에서는 체력 측면에서 출생시기가 중요했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자질과 노력이 중요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교육은 아이스하키와는 확연히 다르다. 어린 시절 학업에 흥미를 잃으면 남들보다 뒤처지게 된다. 또한 한 과목에 흥미를 잃으면 다른 과목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느 대학에 입학하는지가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는 한국사회에서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당연하다. 교육부는 만5세 입학 추진에 조바심을 냈을 뿐, '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 단지 개혁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개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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