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의 풀무질] 된장과 포스트휴먼

한겨레 2022. 8. 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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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의 용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일은 중요하다.

철학이란 개념을 만드는 일인데, 개념은 곧 언어가 결정한다.

현대 철학에서 가장 뜨거운 개념은 포스트휴머니즘이다.

포스트휴먼의 뜻이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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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의 풀무질]

클립아트코리아

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서양 철학의 용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일은 중요하다. 철학이란 개념을 만드는 일인데, 개념은 곧 언어가 결정한다. 낯선 말로 개념을 이해하면 맥락이 없다. 본질을 놓치기 쉽다. 삶에 녹아들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외래어를 가능하면 순우리말로 옮긴다. 추상적인 개념을 직관적으로 풀 수 있다.

예를 들어 비거니즘은 살림이다. 채식주의가 아니다.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건은 모피, 가죽, 화장품, 의약품, 동물원, 수족관 등 동물을 죽이는 모든 행위를 반대한다. 반면 대체육과 배양육은 찬성한다. 고기가 싫은 게 아니라 동물을 죽이는 게 싫다. 육식 반대가 아닌 죽임 반대, 즉 살림이다. 불교의 불살생과 같다. 비건을 ‘살리미’ 또는 ‘살림꾼’으로 부르면 쉽다.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다.

현대 철학에서 가장 뜨거운 개념은 포스트휴머니즘이다. 어떻게 옮길까?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 사전은 “유전자 조작, 생명 연장 등의 첨단 기술을 통하여 인간의 신체를 변형하고, 인간의 정신까지 도덕적으로 향상시키려는 현대 과학 기술의 시대를 인문학적으로 일컫는 말”로 정의한다. 아직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개념도 유동적이다. 포스트휴먼의 뜻이 모호하다. “현생 인류보다 확장된 능력을 갖춘 신인류”라고 정의하지만, 기준이 무엇인가? 어디까지 휴먼이고 어디부터 포스트휴먼인가?

연관 개념과 비교해보자. 트랜스휴머니스트는 기계와의 융합을 통해 신체를 강화한다. 고통과 죽음 등 동물적 한계를 기술로 넘는다. 무병장수, 영생을 좇는다. 초인공지능을 예견하는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대표적이다. 일론 머스크, 유발 하라리도 트랜스휴머니스트다. 인간 능력의 무한 확장을 믿는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계몽주의의 연장이다. 이성의 힘으로 인류를 업그레이드한다.

우리는 이미 트랜스휴먼이다. 컴퓨터로 두뇌를 보완한다. 과거에 비해 엄청난 정보 처리 능력을 가졌다. 머리로는 몰라도 스마트폰 하나면 다 알 수 있다. 초인적인 힘이다. 그러나 아직 포스트휴먼은 못 된다. 전자는 기술의 문제라면 후자는 인식론과 존재론, 윤리의 문제다. 나를 정의하고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다. 휴머니즘 이후의 패러다임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은 백인 남성 엘리트가 이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도나 해러웨이, 로지 브라이도티 등 페미니스트가 주도한다. 인류세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실천이다. 계몽주의 비판이다. 인간중심주의와 이원론을 해체한다. 인간과 비인간, 백인과 유색 인종, 남성과 여성 따위의 인위적 경계를 허문다. 육체와 영혼, 자연과 문화가 하나 된다. 종차별, 인종차별, 성차별 등 모든 차별에 저항한다. 휴머니즘은 실존이 목표였다. 포스트휴머니즘은 공존이다. 내가 주체로 있는 것보다 함께 살자는 것이다.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의 저자 프란체스카 페란도는 콤부차의 비유를 든다. 홍차를 발효시킨 음료다. 발효란 곧 공생이다. 차가 균과 어울려 새로운 유기체로 바뀐다. 한국인은 된장이 더 쉽다. 콩을 발효시키면 장이 된다. 되어감, 되기(becoming)는 언제나 공진화다. 콩만 있음(being)으로는 절대 장이 될 수 없다. 효모와 적절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바람과 물이 필요하다. 장은 말하자면 포스트-콩이다. 다른 생명과 합하여 한층 숙성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비인간 존재와 하나 되어 새롭게 진화한다.

18세기 린네가 ‘호모 사피엔스’를 명명했을 때, 인류는 이미 든사람이었다. 머리에 든 게 많았다. 오늘날 인류는 난사람이다.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 나온 트랜스휴먼이다. 이제 됨됨이를 따질 때다. 포스트휴먼은 된사람이다. 환경과 성숙한 조화를 이뤄야 한다. 공생적 균형이 깨지면 되기도 전에 전부 썩어버리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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