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와 다른 길 걷는 토론토 [정혜진의 Whynot 실리콘밸리]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 2022. 8. 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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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러닝 대부' 힌턴교수 정착 등
AI 성지로 자리잡은 토론토
인구 절반이상이 해외 출생자
다양성의 힘이 인재 끌어모아
캐나다 토론토대 앞에서 학생들이 길을 거닐고 있다. 토론토=정혜진 특파원
[서울경제]

지난달 딥러닝(심층 기계 학습)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명예교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토론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힌턴 교수는 이미지 검색부터 자율주행차 기술, 단백질 구조 분석까지 오늘날 거의 모든 영역에 딥러닝이 쓰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메타(옛 페이스북)의 인공지능(AI) 개발을 책임지는 얀 르쾽 수석 과학자를 비롯해 초거대AI ‘GPT-3’를 개발한 세계 최대 AI 연구소 오픈AI의 공동 창업자인 일리야 서츠케버 등 현재 AI 연구를 주도하는 이들이 모두 힌턴 교수의 제자다. 매년 600명 이상의 AI 분야 박사가 배출되는 등 토론토가 AI의 메카로 자리 잡는 데 있어 힌턴 교수의 공로가 상당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럼에도 질문은 남았다. 왜 (미국이 아니라) 캐나다인가.

기내 영화 목록에서 캐나다인인 로버트 코헨 감독이 2015년 만든 ‘캐나다인 되기(Being Canadian)’라는 다큐멘터리가 눈에 들어온 것도 그런 이유였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20년 넘게 활동해온 코헨 감독은 자신이 캐나다인이라는 사실을 밝힐 때마다 캐나다에 대해서라고는 겨울과 메이플시럽 정도인 미국인들의 반응에 답답함을 느낀다. 캐나다인을 규정짓는 특징을 직접 찾아나선다.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인터뷰이들은 캐나다가 무색무취하게 여겨지는 상황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감독은 결국 캐나다인을 뚜렷하게 특징짓는 데 실패한다. 한국계 캐나다인인 캐서린 리 토론토글로벌 선임 어드바이저는 “캐나다에 사는 이민자들은 코리안 캐내디언(한국계 캐나다인) 등으로 자신을 정의할 뿐 캐나다인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따로 없다”며 “미국이 온갖 인종이 섞여 미국인으로 융합이 되는 멜팅폿(용광로)이라면 캐나다는 저마다 제각각의 색으로 존재하는 문화 모자이크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워낙 다양성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나라지만 그 중에서도 토론토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2016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 중 51%가 해외 출생자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40만 1000여 명의 외국인이 일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 캐나다로 입국했고 토론토시에서만 11만 2800건가량의 영주권 발급이 이뤄졌다. 최근 5년(2016~2021년)간 토론토에서 늘어난 테크 업계 일자리가 8만 8900개로 북미 전체에서 1위를 기록한 것도 이민자에게 열려 있는 문화가 있기에 가능했다. 미국이 한 해 전문인력들의 취업 비자(H-1B) 허용 규모를 8만 5000명대로 한정한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인도·중국·한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실리콘밸리로 모여든 이들이 H-1B 추첨 당락을 두고 몇 년씩 전전긍긍하고 입국 심사 때 종종 비자 문제로 곤혹을 겪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영국 브리스톨 출신으로 미국 카네기멜론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1987년 토론토에 정착한 힌턴 교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라마다 이민자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데 캐나다는 매우 다양성이 높은 문화를 갖고 있고 거의 유일하게 이민자에게 우호적인 국가다. 전 세계 외국인 과학자들에게 매력적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을 언급하며 “과거에는 미국 역시 이민자들을 환영했고 많은 유럽과 아시아의 과학자들이 몰려갔다”며 “하지만 오늘날 그 역할을 하는 것은 캐나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란 출신인 제자들과도 일하고 있는데 미국이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라고 말했다. 캐나다는 난민 지위를 얻은 이들에게도 기초 연구 기금을 제공한다. 힌턴 교수는 2013년 그가 설립한 머신러닝(기계학습) 업체 DNN리서치가 구글에 인수되면서 미국 실리콘밸리의 구글 리서치에서 일했다. 그러던 그는 몇 년 뒤 다시 토론토로 돌아왔다. 이후 구글은 AI 거점인 구글 캐나다 법인의 직원 규모를 3000명까지 확대했다. 우버의 자율주행 기술 연구를 총괄하다가 자율주행 스타트업 와비를 세운 라켈 우르타순 토론토대 교수 또한 토론토에 머물기를 고집해 우버가 토론토에 자율주행 연구 거점을 세운 일화도 유명하다.

토론토의 AI 생태계는 다른 분야로도 확장될 가능성이 곳곳에서 관측되고 있다. 전 세계 퀀텀 컴퓨팅 분야에서 젊은 석학으로 떠오른 알란 아스푸루 구지크 토론토대 화학 및 컴퓨터과학 교수가 대표적이다. 멕시코계 미국인인 구지크 교수는 하버드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8년 토론토대로 자리를 옮겨 화제를 일으켰다. 구지크 교수는 미국을 떠나 캐나다에 자리 잡은 이유로 다양성을 꼽으며 “토론토는 매우 다양성이 높은 도시로 내 아이들이 자랄 만한 곳이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한때 실리콘밸리를 키운 다양성의 위력을 캐나다 토론토의 생태계를 통해 체감하는 부분이다.

사진 설명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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