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돈보다 과태료 더 내" "고물가 무섭다"..시동 꺼진 푸드트럭

곽진산 2022. 8. 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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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창업' 시동소리 컸지만
규제부터 풀었던 정부 고민 부족
사라진 지역축제 코로나 직격탄
'5천만원 트럭' 1천만원대 매물로
돌아온 축제..푸드트럭은 돌아올까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세빛둥둥섬에서 푸드트럭 운영자 정주희씨가 남편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저한테는 푸드트럭이 청춘이에요. 트럭에서 손님들과 만나고 소소한 얘기를 나누면서 제가 만든 음식을 손님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게 좋았어요.”

부산에서 닭꼬치 전문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박민우(31)씨는 코로나19 유행 내내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코로나19 이전에도 매출이 썩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한탕’할 수 있었던 전국의 축제·행사가 모두 중단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쉽게 푸드트럭을 놓지 못하고 있다. 5년 동안 함께 해온 푸드트럭을 접으면 자신의 청춘도 실패로 결론이 나는 것만 같아서다.

푸드트럭은 한때 청년의 희망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규제개혁 대표 사례로 음지에 있던 푸드트럭을 양지로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청년창업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했다. 6000개 일자리가 생길 거라는 장밋빛 전망도 제시했다. 마침 2015년 푸드트럭을 소재로 한 영화 <아메리칸 셰프>가 개봉하며 푸드트럭 예비 사장들의 롤모델이 됐다. 나만의 레시피로 손님에게 직접 찾아간다는 낭만과 꿈에 부푼 청년들이 1t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생계형 1t 트럭 판매량은 꾸준히 늘었다.

2022년 현재 푸드트럭 시동 소리는 좀체 들리지 않는다. <한겨레>는 박민우씨를 비롯해 전국의 푸드트럭 운영자 10명을 만났다. 푸드트럭을 막는 ‘방지턱’들은 곳곳에 있었다.

■ 규제부터 풀었다

“당시에는 정부 사업이었으니까 공무원들이 열심히 했었죠. 하지만 세세하게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아요.”

푸드트럭 창업 붐이 일었던 초기부터 푸드트럭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박상화(32)씨는 애초 한국에서 푸드트럭이 자리 잡기는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미국을 돌면서 푸드트럭을 공부했다. “한국에서도 이제 규제가 풀린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기대가 많았죠.” 그런 기대가 꺾인 건 다소 황당한 이유 때문이었다. 푸드트럭은 시행 초기에 허가된 장소에서만 영업할 수 있었다. 이곳저곳을 누비며 음식을 파는 것은 환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게다가 허가된 장소도 문제였다. 인적이 드문 고가도로 밑, 평일에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박물관이나 공원 부근에 허가가 나기 일쑤였다.

몇 년이 흐르고 나서야 이런 문제점이 일부 개선됐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노점상 이미지 탓에 주변 상인들의 신고가 빗발쳤다. 미국의 큼직한 도로와 비교해 한국 도로는 너무 좁았다. 주변 소규모 자영업자들 역시 푸드트럭 사장님들과 상생할 만큼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2018년부터 닭강정 푸드트럭을 운영했다는 김종욱(54)씨는 “허가를 받고 운영하는 건데 단속 신고를 워낙 많이 받았다. 어떨 땐 쓰레기통으로 번호판을 가렸다고 해서 벌금을 낸 적도 있다”며 웃었다. 김씨는 “이제는 길거리에서 절대 영업 안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배달 주문을 받거나 축제·행사장에서만 장사를 한다. 한국은 식당·카페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워낙 많다. 푸드트럭이 아니어도 값싸고 맛있는 음식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2017년 강남역 주변에서 푸드트럭을 운영했던 임재용(34)씨는 “사람이 많은 강남역이 인기가 좋아서 푸드트럭 장소를 확보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하루에 10만원 벌기 어려웠다”고 했다. 현재 임씨는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 축제는 끝났다

생존하기 어려운 길거리 대신 몰려간 곳은 축제 현장이었다.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은 푸드트럭 운영자들에겐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꼽힌다. “한 번에 많으면 200인분도 팔아요. 그러면 하루 매출만 300만~400만원을 버는 거죠. 인건비만 제외하면 일반 음식점 운영하는 것보다 더 낫죠.” 박민우씨도 축제를 돌면서 현금을 꽤 만졌다고 했다.

각 지역축제는 푸드트럭 성장의 중요한 발판이 됐다. 지역축제는 2014년 555개에서 2017년 733개로 늘었다. 이 기간 푸드트럭도 가파르게 성장했다. 2015년 170대(허가 건수 기준)에 불과했던 푸드트럭은 2017년이 되자 한해 1151대로 7배 증가했다.

축제의 불꽃은 짧았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됐다. 2020년 예정됐던 지역축제 968개 가운데 743개가 취소됐다.

지역축제에 의존하면서 푸드트럭의 자생력은 떨어진 상태였다. 청년 창업가들이 다양한 레시피의 음식을 뽐내던 푸드트럭은 만들기 쉽고 간편한 축제용 메뉴를 주로 내놓기 시작했다. 짧은 축제 기간에 최대한 많이 팔기 위해 닭꼬치, 핫도그, 감자튀김, 커피 등으로 메뉴가 단순화한 것이다.

축제가 사라지자 시민들은 푸드트럭의 축제용 메뉴를 외면했다. 박상화씨는 “축제에선 빨리 팔아야 하다 보니 메뉴가 단순해졌다. 그렇게 악순환이 반복된 것 같다”고 했다. 하혁 한국푸드트럭협회 회장은 “축제에선 잘 되는 업체만 잘 된다. 속된 말로 아무거나 팔아도 잘 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론 푸드트럭 발전이 어렵다”고 했다. 소비자 반응은 푸드트럭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직장인 조은지(28)씨는 “배달도 잘 되는데 푸드트럭 음식을 굳이 사 먹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푸드트럭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 푸드트럭을 함께 운영했던 박종진(42)·정주희(43)씨 부부는 코로나19 시기 남편 박씨가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푸드트럭을 팔려했지만 결국 내놓지 못했다. 다들 비슷한 처지인지라 1t 푸드트럭 매물이 쏟아졌다. 5천만원에 육박했던 트럭값은 1천만원대로 떨어졌다. 부부는 최근 다시 푸드트럭에 시동을 걸었지만 매출은 신통치 않다.

서울에서 커피 푸드트럭을 운영 중인 박아무개(41)씨는 코로나19 기간 보험 설계사로 일했다. 2016년 푸드트럭을 시작해 잘 나갔을 때는 한 해에 순이익만 5천만원이 남았다고 한다.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다. “지금은 작은 축제라도 있으면 고마워요. 코로나 확진자가 또 증가하는데 언제 또 영업이 제한될지 모르니….”

코로나 이전 밤도깨비야시장에서 매출 1위를 기록한 적도 있다는 스테이크 푸드트럭 사장 조아무개(47)씨도 코로나19 이전에 벌었던 돈으로 온라인 음식배달 사업을 했으나 잘되지 않아 다시 길 위로 나왔다. 현재 금천구청역 2번 출구 앞에서 스테이크를 팔고 있다. “매출은 얘기하기도 민망해요. 거의 안 팔린다고 봐야죠.”

지난달 2일 열린 부산항 축제에 참가한 푸드트럭이 줄지어 서있다. 곽진산 기자

■ 고물가 시대가 왔다

“지금까지 번 돈보다 구청에 낸 점용료, 과태료가 더 많을 거예요.” 10년 넘게 서울 강남구에서 푸드트럭을 운영 중인 박두선(54)씨는 합법적인 영업이 가능하기까지 걸렸던 시간을 웃으며 회상했다. 강남구청은 강남구 일부 지역에서 2017년까지 푸드트럭 영업을 불허했다. 서울시가 푸드트럭 영업자 모집 공고을 내고 사업자를 선정했는데 구청에서 이를 막은 것이다. 주변 아파트 주민들의 반대가 많고 푸드트럭이 소음·주차난을 일으킨다는 이유에서다. 행정심판 끝에 영업신고가 가능해졌다. 푸드트럭 5대가 2017년 3월22일 영업신고를 마쳤다. 하지만 이후에도 주변 상인들의 신고와 그로 인한 구청과의 갈등은 계속됐다고 한다. 그런 박씨도 “이제는 물가가 더 무섭다”고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기지개를 켜는 듯 했던 푸드트럭 사장들에겐 최근 가파르게 상승하는 물가가 넘기 힘든 턱이 되고 있다. 튀김을 파는 박씨는 “남는 게 없다”고 했다. 밀가루, 식용유 가격이 모두 올랐기 때문이다. 식용유는 올해 초만 하더라도 3만원대에 구매했지만, 최근에는 7만5천원을 줘야 한다.

코로나19 재확산 속에서도 지역축제는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지난 7월2일 부산에서 코로나19 유행 이후 처음으로 부산항축제가 열렸다. 첫날 푸드트럭 15대가 행사장을 찾았다. 모처럼 대규모 인파가 모인 터라 푸드트럭 사장들도 땀을 흘려가며 손님들을 맞았다. 하지만 이들에게 푸드트럭의 미래를 묻자 고개를 저었다. 50대 어말경씨는 “영업이 잘 되는 건 아니고 그냥저냥 운영한다”고 했다. “재료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서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일본식 샌드위치를 파는 문석환(27)씨는 “그나마 인기 있는 자리를 배정받아 소소하게라도 운영하고 있다. 자리 얻기도 어렵고 푸드트럭만 해서는 생계를 꾸리기 벅차다”고 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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