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으로 치닫는 미·중 관계.."트럼프 때보다 더 나빠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대만 방문 이후 중국이 8개항의 대화·협력 단절을 선언하면서 미·중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양국 간 충돌을 회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드레일’마저 위협받으며 미·중 관계가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보다 더 악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6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날 필리핀에서 엔리케 마날로 외교장관과 회담을 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8개항의 대화·협력 단절을 선언한 것에 대해 “무책임한 조치를 취했다”고 비판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어 “(중국이 취한 조치에는) 의사 소통 오류와 위기를 피하기 위해 필수적인 군사적 대화 채널뿐 아니라 초국가적 범죄와 마약에 대한 협력도 포함돼 있다”며 “그들은 미국과의 기후 협력도 중단했는데 이는 미국이 아니라 전 세계, 특히 개발도상국에 벌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국 간 차이 때문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린 사안에 대한 협력을 인질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앞서 지난 5일 펠로시 미 하원의장 대만 방문에 대한 대응 조치의 일환으로 전구 사령관 통화·국방부 실무회담·해상 군사안보 협의체 회의를 취소하고 미·중 간 불법 이민자 송환·형사사법·다국적 범죄 및 마약 퇴치 협력, 기후변화 협상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강력한 사전 경고에도 펠로시 의장이 지난 2~3일 대만 방문을 강행하자 대만을 겨냥한 대대적인 무력시위를 벌인 데 이어 미국을 향해서도 항의성 보복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로 인해 양국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안전 장치가 무력화되면서 미·중간 긴장은 더욱 고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됐다.
그동안 양측은 전방위적인 갈등 국면에서도 양국간 소통을 유지하고 협력 가능한 공간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해 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8일 전화 통화에서도 대만 문제 등을 놓고 설전을 벌였지만 기후 변화와 보건 안보, 마약 문제 등에 대해서는 실무진에 공동 대응을 위한 후속 조치를 지시했다.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펠로시 의장 대만 방문으로 관계가 더욱 경색되면서 군사적 대화 채널이 단절되고 그나마 양측이 협력 가능한 분야로 꼽았던 지점에서의 협력 노력도 중단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뤼샹(呂祥)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협력 중단은 양국 관계가 1979년 관계 정상화 이후 최저 수준으로 악화됐고 양국이 충돌 직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중·미 관계가 트럼프 정부 시절에 최저점에 있었다고 말해왔지만 현재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콜린 코 싱가포르 국방전략연구소 연구원은 “양국 간 대화 부재는 분쟁 확대 위험이 높아지고 완화 여지가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대만 문제에 대한 미·중 간 긴장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점을 감안하면 대화·협력 중단도 당분간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당분간은 긴장 고조가 불가피하겠지만 양쪽 모두 극단적 충돌을 원하지는 않기 때문에 일정한 시점에 갈등이 봉합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주펑(朱鋒) 난징대 교수는 “중·미 협력은 양국 관계뿐 아니라 글로벌 이슈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며 “중국의 성난 반응이나 대응 조치가 오래 지속되거나 중·미 관계가 계속 악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긴장이 고조된 시기에 있을 때 대화를 유지하는 것은 더욱더 중요하다”며 “우리는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의사소통 오류나 오해로 인한 분쟁 확대를 피하기 위해 중국과의 소통 채널을 개방적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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