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증 제주 전자여행허가제 도입 '딜레마'

임성준 2022. 8. 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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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불법체류 통로 악용" ..제주도, "관광 위축" 시행 유보 요청
태국인 697명 중 417명 입국 불허, 55명 입국 후 무단이탈

무사증(노비자) 입국제도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 제주도에 전자여행허가제(K-ETA) 적용을 추진하자 관광업계가 반발, 논란이 일고 있다. 제주도는 시행 유보를 요청했다.

7일 제주도에 따르면 법무부는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제주도로 우회해 국내에 들어오는 불법 체류자를 막기 위해 제주에 전자여행허가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K-ETA는 기존 무비자 입국이 가능했던 112개 국가 국민을 대상으로 현지 출발 전 전용 누리집 또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여행 정보(인적사항, 범죄경력, 감염병정보, 방문목적, 체류지)를 입력하고 여행 허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 6월 3일 오전 방콕과 제주를 잇는 제주항공 전세기를 타고 온 태국인 관광객들이 제주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제주관광공사 직원 등의 환영을 받고 있다. 제주도 제공
정부는 지난해 9월 1일 K-ETA를 도입할 때 국제 관광도시인 점을 고려해 제주도는 제도 적용을 면제했다.

하지만 최근 불법 취업을 노린 외국인들이 제주도에 비자 없이 입국했다가 무단으로 이탈하는 사례가 늘면서 문제가 제기됐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중단된 태국발 제주행 정기 항공편이 재개된 이달부터 이러한 사례가 늘고 있다.

법무부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 따르면 제주항공이 제주∼방콕 직항 전세기 운항을 시작한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나흘간 입국이 허가돼 제주 단체 관광에 나선 태국인 280명 중 55명(19.6%)이 2박 3일 관광 일정에서 이탈해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이 기간 제주항공 직항편으로 방콕에서 제주로 온 태국인은 모두 697명이다.

이들 가운데 417명(59.8%)은 ‘입국 목적 불분명’ 사유로 입국이 불허돼 본국으로 돌아갔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제주로 여행 온 태국인 상당수가 과거 전자여행허가 불허 결정을 받은 이력이 있어 인천공항 등 국내 다른 공항으로의 입국이 차단되자 제주로 우회 입국을 시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697명 중 367명(52.7%)이 과거 전자여행허가 불허 결정을 받은 이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전날에도 제주항공 전세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한 태국인 115명 중 89명을 입국 재심사 대상자로 분류하고 이 중 74명을 최종 입국 불허했다.

제주에서는 지난달 3일에도 관광 목적으로 입국한 태국인 166명 중 36명이 이탈했으며, 현재까지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법무부는 우리나라에 무비자로 입국 가능한 일부 외국인이 전자여행허가를 받지 않아도 입국 가능한 제주를 불법 체류를 위한 장소로 악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법무부는 제주도에 K-ETA를 도입할 경우 불법 체류 등을 목적으로 한 외국인의 국내행 항공기 탑승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또 K-ETA는 결격 사유가 없으면 신청 후 30분 이내에 자동으로 허가되고, 입국 절차도 간편해져 일반 관광객에게 미치는 불편도 크지 않다는 게 법무부 설명이다.

법무부와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이미 지난해 9월부터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전자여행허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만큼 입국 절차 간소화로 관광객 유치에 장애가 되지 않고 범법자, 불법 취업기도자 등을 사전 차단해 무단 이탈과 불법체류 등의 부작용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며 조속한 시행으로 질적 관광을 통한 국제관광지로 명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제주도는 “코로나19 장기화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국제관광의 싹을 틔우는 시점에 갑작스러운 전자여행허가제 도입은 제주 무사증 도입 취지를 퇴색시킬 수 있고, 제주 관광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시행 유보를 요청했다.

관광업계는 지난 6월 2년 2개월여 만에 무사증 제도가 부활함에 따라 코로나19 이후 중단됐던 외국인 관광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가는 상황에서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자여행허가제가 적용된다면 제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사전 심사가 이뤄져 무사증 제도의 실익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부동석 제주도관광협회장은 “불법체류 등에 대한 문제는 공감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전자여행허가제를 도입할 경우에 해외 관광시장이 위축될 것이 명백한 상황으로 입국 절차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검토가 필요하다”라며 “제주지역 관광업계는 법무부가 관광업계의 의견을 무시하고 전자여행허가제 도입을 강행할 경우 관광업계 공동으로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라고 밝혔다.

전자여행허가제 시행에 따른 관광객 유치에 장애가 없을 것이라는 법무부의 의견에 대해서도 “기존 미국, 캐나다, 호주 등 ETA 시행국가와 달리 국내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해외 관광시장이 제한돼 K-ETA 시행에 따른 영향 분석 결과가 현재로서는 없다”고 지적했다.

양필수 제주관광공사 글로벌마케팅그룹장도 “코로나19 여파로 제주 관광업계가 힘든 상황”이라며 “(입국자에 대한) 방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심한 편인데 비자 제도까지 어렵게 되면 관광업계 조기 회복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제주도는 지난 5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제주관광협회, 제주관광공사,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청 등 유관기관과 회의를 열고 전자여행허가제 적용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제주도는 이날 회의에서 합의점은 도출되지 않았지만, 참석 기관·단체들과 의견교환을 통해 질적 관광을 통한 국제관광 활성화라는 점에 뜻을 모은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추가 논의를 지속할 방침이다.

특히 제주도와 법무부, 도내 관광 관련기관·단체 등이 참여하는 전담팀을 구성해 대안을 마련할 때까지 제도의 시행을 유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애숙 제주도 관광국장은 “제주지역 국제관광이 코로나19 여파를 이겨낼 수 있도록 무사증 도입의 이점을 최대한 부각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도출하도록 재차 논의할 계획”이라며“조만간 법무부를 공식 방문해 제주 관광업계의 입장을 명확히 피력하겠다”고 말했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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