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관절 클럽'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박찬일 2022. 8. 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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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밥 먹다가 울컥'] 손톱 밑에 까만 때가 낀 아주머니, 주저앉아서 일하다 관절염에 디스크를 얻은 아주머니. 걱정을 하면 제일성은 다 똑같다. "울 아들이 그만하라는데 놀아가며 쉬엄쉬엄 그냥 해요."
식당 아주머니들은 평생 ‘소주회사 앞치마’를 걸치고 손님 먹을 것을 챙긴다. ⓒ최갑수 작가

너무 인기가 좋아서 예약도 안 된다는 광주의 한 식당에 간 적이 있다. 왜 있잖은가. 반찬을 한 상에 다 놓을 수가 없어서 접시를 ‘이중 깔기’ 해주는 집. 이걸 수라상이라고 불렀더니 동행인이 그릇 수를 세고는 고개를 저었다.

“36첩이네. 황제 상이다.”

우리는 학교 다닐 때 수라상이 12첩이라고 배웠다. 아마도 조선 후기의 기록일 것이다. 수라상의 첩수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어쨌든 12첩을 기준으로 2000년대 한국의 한식집 상은 세 배쯤 나온다. 그 당시엔 임금도 마음껏 못 먹었을 인삼무침도, 얼음 넣은 물육회도, 통통한 샤인 머스캣도 나왔다. 페르시아 사신이 가져왔을 중근동의 참깨가 온통 뿌려져 있는 접시로 가득한 상 아래를 보았는데, 상다리가 아직 부러지지 않고 멀쩡했다. 1960년대에 지은 근대화 문화 한옥. 아마도 자재 부족과 공기 단축으로 한옥 형식만 갖추었을 그 당시 집을 우리는 이미 옛것이라고 사랑한다. 콘크리트로 발라놓은 마당에서 한 걸음 올라서면 사랑채며 안방, 마루에 상이 깔려 있는 그런 전형적인 지역의 한식당이었다. 이런 집에 가면 편안해지는 건, 벽지와 장판 때문이다. 잊고 있던 집 냄새가 난다. 군데군데 변색이 된 그런 벽지의 냄새. 간혹 주인 내외가 자는지 이불장 위로 색깔 고운 담요가 두어 채 개켜져 있기도 한.

점심인데도 서른 몇 개의 접시가 나왔다. 저녁에는 오리와 소고기구이, 회 종류가 더 나온다고 한다. 물론 값은 두 배쯤 높을 거다. 하여간 2만원짜리 점심상에 반찬이 그렇다. 반찬은 간간해서 맛있고, 사람들은 점점 더 밥을 덜 먹는다. 반찬 가짓수는 늘어나는데 반찬은 더 남는 이상한 구조다. 열 두어 숟가락이면 공깃밥 한 그릇이 끝난다. 반찬은 누가 손댄 표도 안 난다. 아직도 전라도 관찰사 부임 잔칫상 그대로다.

밥을 중간쯤 먹었을 때 찬이 한 쟁반 더 들어왔다. 갓 요리해야 맛있는 달걀찜, 해산물찌개와 대여섯 가지는 넘는 김치 같은 ‘밥반찬’들. 그걸 상에 올리자면, 음식 먹던 손님도 수저를 내려놓고 거들어야 한다. 인기 없는 반찬은 상 밑으로 내려간다(아하! 이런 방식이 있군).

그렇게 자리를 마련하는데, 찌개 뚝배기 내려놓던 아주머니의 손톱 밑이 까맣다. 식욕이 뚝 떨어진다. 나는 이런 일에 예민한 편인데, 그렇다고 항의하거나 ‘다시는 이 집에 안 올 거야’ 하는 투쟁심을 갖고 있지는 않다. 저 값에 저리 팔자면 포기해야 할 것도 있는 법이다.

까만 손톱에 대해 미리 해명해두자. 자리를 파하고 일어서는데, 그 아주머니가, 평생 무상으로 술이나 조미료 기업으로부터 공급받은 폴리에틸렌 앞치마를 걸치고, 카운터 옆에 주저앉아 허리를 구부리고 무얼 하고 있었다. 이미 그이의 앞에는 산더미 같은 채소가 놓여 있었다. 다 손질한 건 한쪽으로 밀어놓고 재게 손을 놀린다.

“머윗대예요?”

“아따, 고구마순이요. 서울 사람들 참.” 저걸 손으로 다 까요? 하고 물어보려다 말았다. 우리가 다 아는 얘기니까.

‘36첩 황제 상’. 밥을 다 먹어도 손 안 댄 반찬들이 남는다.ⓒ최갑수 작가

이런 밥상을 계속 받을 수 있을까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벌교에 가면 꼬막정식이란 게 있다(‘정식·定食’이란 주음식과 반찬이 넉넉하게 갖춰진 한 상차림을 말하는데, 일본식 요리 관행에서 온 말로 알려져 있다). 여러 집이 있는데 한 집이 유독 손님으로 미어진다. 할머니 셋이 40년 넘게 같이 주방과 홀을 꾸린단다. 이런 우애는 도대체!

할머니 두엇은 이미 관절이 많이 안 좋아서 반찬 놓은 쟁반을 들고 가실 때 기우뚱했다. 손님이 얼른 받아들어야 한다. 이 집의 할머니들은 오랫동안 새벽 서너 시에 출근했단다. 가스가 없을 때 연탄불도 피워야 하고, 재료도 다 손질해야 했다. 게다가 예전엔 아침도 팔았으니까. 휴무일 같은 게 없던 시절이었다. 돈이야 벌었겠는가. 얻은 건 관절염에 디스크였을 것이다. 우리 식당 아주머니들은 바닥에 앉아서 부엌일을 한다. 쪽파도 다듬고 열무도 손질한다. 냉이 흙도 털어내고 가지도 자른다. 그러니 허리가 못 당해낸다. 산재를 관리하는 관청에서 간혹 자료와 스티커를 보내준다. 거기에는 대체로 이렇게 쓰여 있다.

“무거운 것을 무리해서 들지 마시오.” 사실, 무거운 것보다 주저앉아서 일하는 관습이 더 문제 같다. 밭일도 그렇게들 한다. 농촌, 어촌에 인공관절 수술을 권유하는 모종의 임무를 띤 사람들이 돌아다닌다는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만큼 환자가 많다. 도시 사람들은 햇빛 안 봐서 피부도 곱고, 입식 부엌에서 서서 일하니 관절도 대개 좋다.

손톱 밑에 까만 때(?)가 낀 그 아주머니, 평생 조리복이나 서빙 유니폼 대신 ‘참이슬 앞치마’로 버틴 아주머니. 걱정을 해드리면 이 아주머니들의 제일성은 다 똑같다.

“울 아들이 그만하라는데 놀아가며 쉬엄쉬엄 그냥 해요.” 일면식도 없는 외지인일망정 혹시라도 자식 욕 먹이는 짓일까 싶어서 묻지도 않은 말을 하시는 한식집 아주머니들이여, 이제 고구마순도 벗기지 말고 머위순도 그러지 마셔라. 안 먹으면 된다. 간단하게 소시지와 어묵볶음이면 된다. 아니, 아예 봉지 부욱 뜯어서 요리해주는 레토르트가 좀 많은가. 하지만 말이 그렇지 우리는 그런 간편한 음식을 내놓는 식당에 되도록 가지 않으려 한다. 저 아주머니들이 골수를 다 내줄 때까지 기다린다. 우리 시대에는 그래도 진짜 밥집이 남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며 말이다.

“아휴, 이것만 벗기남. 찬은 끝도 없어. 요새는 뭔 일인지 콩나물 대가리에 껍질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구만.” 내가 좋아하는 한 추어탕집이 있다. 이 집 아주머니도 인간이 예수님을 모방한 기술로 인기가 드높은 인공관절 클럽 멤버다. 추어탕은 아주 별미인데 비결을 물었다. 별게 없다.

“우거지를 받으면 껍질을 다 벗겨야 해요. 누가 벗겨다 줘? 인건비가 얼마나 비싼 세상인데.” 이제 이런 밥상을 우리는 먹을 수 있을까. 미구에 사라져서 유물이 될 것 같다.

노포 취재한다고 전국의 오래된 식당을 돌아다녔다. 한 식당의 아주머니가 잊히지 않는다. 그이는 비어 있는 손님 탁자에 앉아서 마늘을 저미고 있었는데 내가 다가서자 화들짝 놀랐다. 마늘을 저미면서 졸고 있었던 거다. 늘 피곤해서 화장이 떠 있던 아주머니였다. 1년에 엿새 쉰다고 했다.

“추석하고 설날 합쳐서 6일이네….” 밥숟갈 놀리는 일이 점점 힘들어진다. 

박찬일 (셰프)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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