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고기가 될 돼지는 끊임없이 비명을 질렀다

이정규 기자 입력 2022. 8. 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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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비긴]어느 농장의 돼지를 드시겠습니까? 좁은 축사에서 숨 쉬는
돼지와 현대 설비에서 빨리 성장하는 돼지
소도시 외곽에 위치한 20여 년 된 돼지농장 축사의 모습. 30℃ 넘는 바깥보다 더 뜨거운 축사 안은 암모니아가스 냄새로 가득 찼다. 이정규 기자

*초록색 글자는 <동물 기계: 새로운 공장식 축산>(루스 해리슨 지음, 에이도스 펴냄, 2020(1964))에서 인용했습니다.

돼지축사 안으로 들어가자 후끈한 공기가 올라왔다. 30℃ 넘는 축사 바깥보다 더 뜨거운 열기였다. 푹 익힌 듯한 돼지 분뇨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독한 냄새에 눈이 따갑고 머리가 아팠다. 속도 메스꺼웠다. 이곳은 태어난 지 3개월가량 지나 아기 티를 벗은 돼지를 110㎏ 넘는 무게로 키우는 ‘비육돈사’였다.

세워진 지 20여 년이 된 이 돼지농장. 입구에는 ‘방역으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표지가 걸려 있었다. 2022년 7월 초, 이곳에서 일용직으로 이틀간 일하며 밀집형 축사의 실태를 살펴봤다. 삼겹살로 햄으로 돈가스로 만들어지는 ‘친숙한’ 돼지. 우리는 육즙이 흐르는 돼지고기가 어떻게 생산돼 내 입속으로 들어오는지 알지 못한다. 돼지를 너무도 모른다.

코를 찌르는 분뇨 냄새, 바닥에 누운 돼지들

벽돌로 지은 축사에는 창문이 나 있지만 햇빛은 부족해 보였다. 오후 3시에 형광등 수십 개가 줄지어 천장에 매달려 있었는데도 축사 안은 어두컴컴했다. 환풍기가 돌아가지만 암모니아가스 냄새가 가득 찼다. 사람이나 돼지나 어두우면 움직임이 줄고, 덥고 냄새나는 가스가 올라오면 몸이 처진다. 내부에 가스가 가득 차면 형광등이 잘 작동하지 않을 때도 있다.

돼지들은 긴 구멍이 촘촘히 난 바닥재(슬랫)에 누워 살을 맞댄 채 숨을 내쉬었다. 돼지는 사람보다 열기에 더 약하다. 피부를 감싼 지방층이 단열재 역할을 해서 온도가 높은 환경에서 낮은 체온을 유지하기 어려워서다. 6~8개월 된 어른돼지의 적정사육 온도는 20℃ 안팎이다. 웅웅거리는 환풍기 소리와 꽥꽥거리는 돼지 울음이 섞여 축사 안에 울려퍼졌다.

녹슨 철제 울타리와 색이 바랜 콘크리트 담장으로 둘러싼 직사각형 모양의 ‘돈방’이 축사 안에 일렬종대로 이어졌다. 좁은 돈방마다 성인 남자보다 덩치가 큰 돼지가 30여 마리씩 들어갔다. 자유롭게 걷는 돼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바닥재의 틈 사이로 돼지들이 싼 오줌과 똥이 배관으로 떨어진다. 쌓인 분뇨는 하루에 두 번씩 배관을 타고 분뇨처리장으로 간다. 돼지들은 틈새로 흘러내리지 못한 거무튀튀한 분뇨를 몸에 묻힌 채 누워 있었다.

“꽤애애액!” 축사 깊은 곳에서 한 돼지가 고성을 내지르며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근처에 있던 돼지들은 밀려났다. 돼지를 살처분하는 영상에서 들었을 법한 날카로운 소리는, 몸이 움찔할 정도로 컸다. 과도하게 밀집해서 키우면 돼지들 사이에 권태와 악행이 발생한다. 돼지 울음소리는 이곳저곳에서 더 크게 울렸다.

축사를 빠져나왔지만 돼지의 비명은 숙소까지 이어졌다. 밤에도 20여 분마다 귀를 찌르는 고성이 숙소 창문을 뚫고 들려왔다. 돼지는 행복할 때 낮고 느리게 나오는 꿀꿀 소리를 낸다. 괴로우면 높고 빠르게 꽤액 비명을 지른다. ‘(돼지의) 긍정적인 반응은 부정적인 반응보다 더 짧고 진폭 변화가 적다.’ 최근 연구(Elodie F. Briefer et al., Nature Scientific Reports, 2022)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돼지 울음소리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여기서 살긴 쉽지 않을 거다.” 방을 함께 쓰는 중국동포 ㄱ씨가 말했다.

충남 홍성 성우농장의 어미돼지가 될 예비돈이 머무는 휴식공간. 박승화 기자

바깥 공기를 쐬는 건 옮길 때, 출하될 때

밀집형 축산업에서 돼지는 모돈사, 자돈사, 비육사로 나뉘어 생산된다. 인간이 먹는 ‘산업돼지’(양돈 농가에선 식용으로 키우는 돼지를 ‘산업돼지’라고 부른다)는 6~8개월에 걸쳐 빠른 속도로 키워진다. 보통 돼지의 수명은 10여 년이지만 산업돼지는 불과 8개월이면 도축장에 보내진다.

돼지의 삶은 모돈사에서 시작된다. 어미돼지는 비좁은 스톨(사육틀)에 갇혀 새끼를 낳는다. 어미가 몸을 움직이다 새끼가 죽을 수 있어서다. 아기돼지의 이빨은 태어난 뒤 깎인다. 어미 젖을 빨 때 상처가 나지 않게 하려는 의도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서로 꼬리를 깨물거나 먹는다는 이유로, 꼬리도 잘린다. 어미돼지의 젖을 충분히 먹은 아기돼지는 어느 정도 자라면 자돈사로 옮겨 3개월가량 키워진다. 여기서 비육사로 옮긴다. 이곳에서 3개월 동안 110㎏ 이상으로 클 때까지 살을 찌운다. 산업돼지가 바깥 공기를 맡으며 걸어다닐 기회는 많지 않다. 사육장을 옮기는 때와, 출하돼 도축장으로 보내질 때 정도다.

이 농장 한편에 재래식 축사가 남아 있다. 여전히 사용되는 축사 안에 10여 마리 돼지가 바닥에 죽은 듯 누워 있다. 몸에 똥이 범벅인 채. 울타리가 쳐져 있지만 바깥에 노출된 축사에는 지붕이 있으나 마나 7월의 강한 햇볕이 그대로 들이쳤다. 돼지들은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급수대에서는 그나마 움직임을 보였다. 시커먼 바닥에는 물과 분뇨가 섞였다. 설비가 없어 분뇨는 고용된 노동자가 치웠다. 노동자는 거의 이주노동자다. 누워 있는 돼지 중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이 돼지농장을 그만둔 뒤, 7월18~19일 전국 최고 돼지 생산량을 기록하는 충남 홍성을 찾았다. 동물복지 문제와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는 현대식 축산농가의 노력을 살폈다. 축사의 밀집도를 낮추고, 온도를 조절하고, 암모니아가스를 정화하는 노력으로도 돼지들의 움직임과 울음소리가 달랐다. 돼지는 아마도 모든 가축 중에 가장 괄시받는 동물일 것이다. 사실 돼지는 고지식할 정도로 깨끗하고 활기차며 지적인 동물이다. 며칠 전 다른 축사에서 봤던 돼지는 밀집형 축산이 만들어낸 산물일 수도 있겠다.

밀집형 돈사 중 현대화가 된 곳에서 산업돼지의 삶은 나아지고 있다. 홍성 성우농장에는 어미돼지가 될 예비돈의 휴식공간이 있다. “새롭게 온 돼지는 여기에서 엄마가 될 준비를 한다. 농장의 적응 단계다. 새끼를 낳은 어미돼지도 이곳에 와서 회복기를 갖는다.” 이도헌 성우농장 대표가 말했다.

돈사 바닥에는 톱밥이 깔렸다. 돈방은 칸칸이 나뉘지 않고 돼지들이 뛰어놀 만큼 넓었다. 축사 바깥으로는 내부 온도를 낮추려 촘촘한 그물망이 설치됐다. 축사 높이는 4m가량으로 공기가 순환될 만큼 높았다. 무엇보다 축사 안으로 들어가자 인기척을 느낀 돼지들이 멀리서 뛰어왔다. 축 처져서 누운 돼지는 한 마리도 없었다. 돼지는 사람을 반기며 꿀꿀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이도헌 대표는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되는 축사의 각종 수치도 보여줬다. 돼지농장 입구에는 돼지 분뇨로 대체에너지를 만드는 바이오매스 발전소도 보였다. 이곳에선 주변 농장의 돼지 분뇨까지 모아 전기를 만들어낸다.

충남 홍성 시온팜스는 암모니아가스 저감장치를 축사에 설치해 돼지 사육환경을 개선하고 악취를 줄이고 있다. 박승화 기자

“동물복지 신경 쓴 돼지고기에 돈 더 낼 소비자 기다려”

악취를 잡고 적정 온도를 유지하려 최신 설비를 도입한 농가도 있다. 홍성 시온팜스의 사육장 복도에는 바깥보다 시원한 공기가 가득했다. 이 농장의 모든 비육돈은 무더운 여름에도 에어컨으로 조절된 적정사육 온도에서 자란다. 사육장 입구에 설치된 에어컨 계기판은 19℃를 가리켰다. 돈방에는 암모니아가스를 정화하는 공조장치가 작동했다. 노후한 농장에서 풍겼던, 머리를 아프게 하는 분뇨 냄새는 없었다. “시설을 현대화하는 데 3억원 넘는 빚을 졌다. 이 일을 계속하려고 투자한 것이다. 사육환경이 좋을수록 돼지가 빨리 자란다. 돼지를 빨리 키워서 빨리 출하해 이윤을 낼 생각이다.” 최동현 시온팜스 대표의 설명이다. 이 농장에는 4500마리 비육돈이 자라지만 직원은 3명밖에 없다. 빠른 전환율, 고밀도 비육, 높은 기계화 비율, 저노동, 판매 가능한 제품으로서의 효과적인 변환, 이 다섯 가지가 밀집식 동물생산 시스템의 핵심이다.

이런 노력으로 생산된 고기는 친환경·동물친화 기준을 세워 육류를 유통하는 ‘에스푸드’라는 업체에 공급된다. 에스푸드는 △동물친화 △생산정보 공개 △사회적가치 창출 △환경보호 실천 등을 충족하는 축산농장과 유통계약을 맺어 브랜딩한다. “기후변화나 동물복지 문제에 관심 있는 분을 잠재고객으로 생각한다. 이런 문제를 고민해 나온 돼지고기에 돈을 더 낼 소비자를 기다린다. 소비자는 돼지가 어떻게 자라났는지를 알고, 더 나은 돼지고기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이도헌 성우농장 대표가 말했다.

주름 잡힌 피부 아래 검은 동공

돼지농장에서 나흘을 보내고 한동안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눈이 마주친 돼지는 쌍꺼풀처럼 주름 잡힌 피부 아래로 동그란 흰자와 검은 동공이 보였다. 미동 없이 서 있던 돼지를 한참 바라봤다. 동물이 빨리 자라 살만 찌운다면, 동물에게 약물을 과도하게 사용하거나 평생 어두운 곳에서 가두어 키운다 해도 그 행동이 잔인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동물복지 고전으로 평가받는 <동물 기계>를 1964년에 낸 루스 해리슨의 지적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할지 모른다.

홍성(충남)=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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