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發 글로벌 인플레 '경고음'.."식량위기 내년까지 지속된다"

이재은 기자 2022. 8. 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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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온·가뭄에 잇따른 작황 부진
전문가 "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

미국 중부 오클라하마주에서 소 농장을 운영하는 찰리 스완슨씨는 최근 키우던 소 80마리를 팔았다. 이달 들어 기승을 부린 폭염 때문에 목초지가 말라붙으면서 가축 사료인 건초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오클라하마주의 기온은 7월 들어 연일 섭씨 37도를 웃돌았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가뭄으로 소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미 남부 테네시주의 옥수수 농장들도 폭염과 가뭄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곳에서 옥수수를 재배하는 에디 샌더스는 WSJ에 “올해는 덥고 건조한 날씨 때문에 옥수수 수확량이 평년의 3분의 1에서 절반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콩 수확은 이보다 수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8월까지 폭염이 지속될 경우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최근 지구촌을 강타한 폭염이 하반기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고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변수로 부상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번 폭염은 북미, 유럽, 아시아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그 부작용이 시차를 두고 물류, 에너지, 식량공급 등에 영향을 미치면서 물가를 밀어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 40도 폭염에 시달리는 세계 경제

6일 국제금융센터가 발표한 ‘최근 글로벌 폭염 확대에 따른 세계경제 영향’ 보고서에서 세계 주요국이 기록적 폭염과 가뭄에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 북서부 지역의 경우 평년보다 섭씨 10도 가량 높은 고온이 지속되고 있고, 유럽에서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등의 기온이 섭씨 40도에 육박하거나 넘어섰다.

올해 6월 때 이른 폭염이 이어지는 스페인 남부 세비야 거리에서 여성들이 부채질을 하며 걸어가고 있다. 당시 세비야와 인근 코르도바 기온은 40도, 익스트리마두라의 과디아나 밸리는 42도, 남부 지방은 43도를 기록했다. 스페인에서 6월 초 이상 고온 현상은 최소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 연합뉴스

아시아 지역의 경우 중국에서 폭염이 한 달 이상 이어지고 있고, 일본에서도 지난 6월부터 연일 40도가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은 지난달부터 낮 기온이 30도가 훌쩍 넘는 무더위가 시작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7월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

문제는 펄펄 끓는 더위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토양의 수분이 증발해 세계 곳곳에서 가뭄이 극심해지고, 산불에 취약한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황유선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최근 북미 일부 지역, 유럽, 아시아 등 중위도 지역에서 폭염이 심해지고 있다”며 “폭염은 물류 차질, 전력 부족, 생산 차질, 식량 부족 리스크를 더 확대해 세계 경제 성장에 추가적인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옥수수 2만6000t을 싣고 우크라이나 오데사항을 떠나 레바논으로 향하던 벌크화물선 '라조니호'가 3일(현지시간)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 근처를 항해하고 있다. / 연합뉴스

◇ ‘히트플레이션’에 식량위기 장기화 우려

시장에서는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이 향후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가뭄으로 농산물 작황이 악화되면서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폭등한 식량가격이 더 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른바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폭염+인플레이션)이다.

영국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서방국 정부와 시장 전문가들은 식량위기가 수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진행 중이던 폭염·가뭄 등 기후변화에 코로나 사태에 따른 공급망 차질이 가세했고,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맞물리면서 식량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세계 식량 안보를 위한 미 국무부 특사인 캐리 파울러는 지금의 식량위기를 촉발한 요인들이 시차를 두고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올해보다 내년이 더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제 북반구의 주요 곡물 생산지는 작황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가뭄모니터(USDM)에 따르면 현재 미 중서부 지역은 파종이 지연된 가운데 옥수수 생산량의 약 29%, 대두의 약 26%가 가뭄에 직면했다. 캔자스주, 콜로라도주 등 겨울밀 생산지에서도 가뭄이 확산되고 있다.

◇ 곡물·농산물 작황 부진에 韓 물가도 비상

작황 부진에 따른 곡물가격 급등은 곡물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물가에도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폭염·가뭄으로 수입 곡물 단가가 높아지면 밀 등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가공식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옥수수 가격 상승은 사료 가격을 밀어올려 축산물과 육가공품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의 모습. / 연합뉴스

지난달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6.3% 상승했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0월(6.8%) 이후 약 2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6%대 고물가의 주된 배경으로는 폭염, 가뭄, 폭우 등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 상승이 꼽힌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에서 농산물은 8.5%를 기록했다.

올 여름 폭염으로 국내 농산물 가격이 뛰고, 해외 곡물 수입가격 상승까지 겹칠 경우 물가가 9월 추석 전후로 7%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밀·옥수수·쌀 등 식용 곡물의 올해 3분기 수입단가 지수가 2분기보다 15.9%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미국 파종 지연으로 국제 곡물 가격이 크게 오른 2분기 계약 물량이 3분기에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제 곡물가격은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 재개 등에 힘입어 3분기에는 안정을 찾을 것이란 기대감도 나오지만, 폭염발(發) 곡물·농산물 작황 부진이 장기화되는 시나리오에서는 연말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폭염을 동반한 이상기후 문제는 물가는 물론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유엔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이상기후 빈도는 1970년대에 비해 5배 증가한 반면, 경제적 비용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해도 8배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WMO는 “앞으로는 이상기후 빈도 및 강도 심화에 따라 비용 증가폭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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