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과학을 사랑한 예술가들 '외계공작소'

김소연 기자 2022. 8. 6.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외계공작소 제공

2041년 한국은 최초의 유인 달 탐사선 ‘치리호’의 발사를 6개월 앞두고 있다. 치리호의 발사는 세계 각국이 치열하게 펼치는 우주 경쟁 속에서 한국이 한몫할 기회로 꼽힌다. 땅 위도 평탄하지만은 않다.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결식아동,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도 아직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한국이 한정된 자원을 우주개발에 투입하는 것이 합당한가를 놓고 공개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6월 15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된 연극 ‘발사 6개월 전’의 배경이다. 과학공연 전문 극단 ‘외계공작소’의 두 번째 작품인 이 연극은 메타버스에서 홀로그램을 통해 진행되는 토론회의 모습을 담았다. 토론자들은 과학자, 정치인, 인권단체 대표, 그리고 환경운동가다. 2041년 한국은. 아니, 2022년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관객들은 한 시간 반 동안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며 고민했다.

우주개발 찬성하나요? 관객이 정하는 결말

과학전문극단 외계공작소의 연극 ‘발사 6개월 전’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연희예술극장에서 공연됐다. 관객참여형 공연이었던 이번 연극에서는 사회자 역을 맡은 주붐 외계공작소 대표의 진행으로 관객들의 토론이 이뤄졌다. 외계공작소 제공

6월 22일 저녁, ‘발사 6개월 전’을 보러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연희예술극장으로 향했다. “과학 연극인데, 지루하지 않고 괜찮다”는 후배의 추천으로 알게 된 연극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과학 연극이니 관객들은 대부분 어린이나 청소년, 그리고 그들의 보호자일 거라고 생각하며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로켓 속 과학이나 달에 대한 상식 같은 걸 멋진 소품을 활용해가며 보여주려나 싶었다. 아니었다.

객석은 20대 초중반의 청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무대 위 소품은 의자 다섯 개와 스크린, 우주선 모형 하나가 다였다. 한 시간 반 남짓한 연극은 배우들의 대화만으로 가득히 구성됐다. 스페이스X니 생물 다양성이니 하는 복잡한 정보들이 계속 거론됐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몰입했다. 배우들과 함께 웃다가도 진행자 역의 배우가 관객들에게 우주개발에 대한 의견을 묻자 활발하게 토론했다. 생소한 광경이었다. 모두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과학 연극을 만든 비법이 궁금했다.

영업 기밀을 캐기 위해 지난 6월 30일 서울 용산구 동아사이언스 본사에 외계공작소 단원들을 초대했다. 주붐 대표와 강신철 기획, 김진성 배우, 그리고 조수아 조연출이 인터뷰에 함께했다. 과학 연극이 어떻게 재미있을 수 있냐는 질문에 강 기획은 “과학 연극이라는 단어 자체도 과학자들에게 소개할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이고, 일반 대중에게는 그냥 연극이라고 한다”고 했다. 이어 “과학이라는 말이 붙으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교육을 떠올리며 뭘 배워야 하고, 교육적 측면을 찾고 이해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외계공작소에게 과학은 배워야 할 대상이 아닌, 즐길 수 있는 소재다. 강 기획은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을 예로 들었다. 그는 “기상청이 배경인 드라마다 보니 사용하는 용어들이 어렵다”며 “하지만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재미있어하는 이야기는 이 사이에 발생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 관계”라고 했다. 이어 “과학을 하나의 소재로 삼아 사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고 소개했다.

이들의 의도는 작품의 부제에서 드러난다. 발사 6개월 전의 부제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다. 강 기획은 “이번 작품은 ‘어쩌면 사람들의 선택 기준은 과학적 근거 외에 다른 부분에 있는 게 아닐까’란 의문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이 의문을 담기 위해 작품 초반에는 합리적 근거를 들어 토론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후반부에는 대중의 의사 결정 과정을 교란하기 쉬운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토론 외적 요소들이 등장해 연극의 재미를 살린다.

과학이 발전해야 할 방향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관객들이 직접 찬반 토론에 참여한다. 공연 마지막에는 우주개발 찬성과 반대를 두고 거수투표를 진행한다. 투표 결과에 따라 그날 공연의 결말이 바뀐다. 강 기획은 “연극 이후 계속 고민하고 곱씹어보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봤다는 후기를 읽었다”며 보여주는 연극이 아닌, 함께 고민할 지점을 나누는 연극을 기획한 것이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주붐 대표(가운데)와 김진성 배우가 외계공작소의 첫 번째 작품 ‘양자전쟁’의 분장을 하고 있다. 왼쪽은 작품의 기획과 과학 관련 자문을 맡은 강신철 기획. 외계공작소 제공

양자역학 다룬 연극이 재밌을까

한편 외계공작소의 첫 번째 작품 ‘양자전쟁’의 부제는 ‘무엇이 진짜인가’다. 1927년 벨기에에서 열린 제5차 솔베이 회의를 무대로 아인슈타인과 보어,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의 갈등을 담았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었던 이들은 새롭게 등장한 양자역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두고 갈등을 벌인다. 강 기획은 “양자역학의 부상과 동시에 아인슈타인이라는 천재가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과학이 절대적이지 않고, 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강 기획은 “공연이 한창 진행되는 도중에 아이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고 나가려고 하는데 아이는 나가기 싫어 버티는 모습을 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연극에서 이야기하는 양자역학 이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시며 보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양자역학이 어렵다 보니 이해할 수 없었고, 아이도 어려우리라 생각하시고는 자리를 뜨려 하셨던 겁니다. 그런데 아이는 연극을 이해하려고 본 게 아니었어요. 등장인물들의 갈등이 재미있었던 거겠죠. 연극을 보러 온 부모님과 아이의 마음이 다른 걸 실제로 보면서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과학문화를 즐기는 데 장벽이 된다는 저희의 생각이 맞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과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많다. 이유를 대라면 학교 과학성적이 나빴다고 말한다. 물리교육을 전공한 강 기획은 “점수가 곧 선호도인 것처럼 말하는 학생들이 안타까워 방법을 고민하던 중 과학 연극을 떠올렸다”고 했다. 한편, 원래 기계공학도였던 주 대표는 홍대 앞 인디 음악에 빠져 뮤지션이 됐다. 밴드를 결성해 ‘뉴턴 3법칙’이란 이름으로 앨범도 냈다.

김진성 배우는 신소재공학을 전공한 뒤 10년 가까이 과학과 관련된 일을 해왔다. 평탄하게, 물 흐르듯이 살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과학이 더 싫어져 갔다. 엔지니어로 일한 지 3년 만에 그만두고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회사를 나오자마자 과학이 너무 재미있었다. 친구들과도 과학 이야기를 하고, 과학 유튜브 채널도 실컷 구독해 봤다.

비슷한 듯 달랐던 이들이 뭉친 건 2020년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과학 커뮤니케이터와 과학 퍼포머를 모아 과학전문인력 네트워크 파티를 개최한 자리에서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던 강 기획과 과학 퍼포머로 활동하던 주 대표, 김 배우가 만났다.

주 대표는 “처음 만든 건 20분짜리 짧은 연극이었다”며 “김 배우가 대본을 쓰고 저와 강 기획이 함께 연출했다”고 했다. 학교에 찾아가 버스킹 형태로 공연하던 짧은 연극을 장편으로 다시 편집해 지난해 외계공작소의 첫 작품으로 양자전쟁을 내놓았다.

밤새 논문 뒤지며 대본 썼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과학적 깊이와 연극의 재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이었다. 극본과 연기를 맡은 김 배우나, 음악과 연기를 맡은 주 대표, 기획과 과학 관련 자문을 맡은 강 기획 모두 고심하던 부분이었다. 특히 첫 작품의 주제는 과학사에서도 큰 족적을 남긴 제5차 솔베이회의. 관객 대다수가 과학에 관심이 많을 터라 내용 측면에서도 양보할 수 없었다.

김 배우는 “요즘 인터넷이 참 잘 돼 있어서 글쓰기 정말 좋다”고 웃으면서 “전문성이 필요한 내용은 논문 등 해외 자료를 뒤진다”고 했다. 이어 “첫 대본을 탈고할 때 정말 행복했다”며 “새벽 네 시에 ‘끝’이란 글자를 쓰고 마침표를 딱 찍은 다음 꿀잠을 잤던 기억이 남는다”고 했다.

극단 외 전문가와의 협업도 있었다. 주 대표는 “과학문화 확산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이미 많다”며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과학적으로도 합당하고 재미 또한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무게추를 잡아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강 기획은 “외계공작소의 강점은 과학 전공자들로 구성돼 과학개념에 대한 이해도를 갖추면서 전문가와 원활히 소통한다는 점에 있다”고 했다.

첫 작품은 성공이었다. 수익금으로 떼부자가 됐다는 의미가 아니다. 양자전쟁을 본 관객이 새로운 동료가 됐다. 조수아 조연출은 “작년 11월 양자전쟁을 관객 입장에서 지켜봤다”며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에서 제5차 솔베이회의를 주제로 과학 연극을 만든 경험이 있어 더 흥미로웠다”고 했다. 이어 “내가 연극을 쓸 때 어렵다고 생각해서 빠뜨렸던 부분이 양자전쟁 속에 재미있게 들어있다는 부분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대학교 1학년이었던 조 조연출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에 외계공작소에 메일을 보냈다. 이후 학교를 휴학한 뒤 조연출로 일하고 있다. 주 대표는 “우리가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어 너무나 기뻤다”고 했다.

연극 ‘발사 6개월 전’은 후반부로 갈수록 등장인물들의 비밀이 밝혀지며 과학적 사실에 의해 이뤄지던 토론의 방향이 흐트러진다. 관객들이 사회적 현안에 대한 자신의 선택 기준을 되돌아보게 하는 장치로 활용됐다. 외계공작소 제공

과학이 강의에 갇히지 않도록

한편 고민도 있다. 강 기획은 “과학 연극이란 게 2000년대에 전국 순회공연을 하는 등 인기를 얻었으나 이후 이어지지 못한 문화”라며 “이번에는 꼭 가능성을 찾아 연극 생태계에서 살아남아야겠다는 부담감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결국 우리가 만드는 연극은 기존의 연극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과학이 강의, 유튜브의 설명 영상에 갇혀버리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교육적 목적 없이 어떻게 하면 과학문화를 즐길 수 있을지 질문해야 한다. 주 대표는 “최근 공연 업계 자체도 기존에 관습화돼있는 관객과 무대의 격차를 없애려 하는 시도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관객들의 성향도 자기표현을 더 하고 싶어하는 추세다. 여기에 발맞춰 외계공작소 또한 발사 6개월 전처럼 토론, 투표 등 관객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방식을 도입했다.

조 조연출은 “발사 6개월 전의 경우 환경문제처럼 평소에 생각은 많이 해봤지만 말할 기회가 없었던 주제를 이야기한다”며 “혼자 생각하던 걸 다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라 온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외계공작소는 올해 11월 세 번째 작품인 ‘발사 세 시간 전’을 공연할 계획이다. 발사 6개월 전과 같은 세계관,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는 이 작품은 치리호가 발사되기 세 시간 전부터 우주비행사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강 기획은 “발사 6개월 전이 사회적 현안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발사 세 시간 전은 개인의 이야기를 담는다”며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가 무엇일지 더 깊게 다루고자 한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 누가 보든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20분짜리 짧은 연극을 공연하러 간 어느 고등학교 교무실에 과학동아가 꽂혀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여기에 인터뷰가 실리면 좋겠다”고 했다는 그들이다. 주 대표는 “단원들 모두 즐겨보던 매체라 과학동아와 인터뷰를 한다는 게 신기하다”고 하면서도 “분명 독자 중에서도 과학문화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외계공작소의 일원으로 함께 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편하게 연락해달라”며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돼있다”고 했다. 외계공작소의 공식 메일은 alienlab5050@naver.com다.  

천체물리학자인 이나라 교수와 생물학자인 우보민 대표가 우주개발을 두고 설전을 벌이는 ‘발사 6개월 전’ 속 한 장면. 외계공작소 제공

※관련기사

과학동아 8월호, [이지사이언스] 학교 밖 과학을 사랑한 예술가들 외계공작소

[김소연 기자 lecia@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