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64] 친밀한 타인이 되는 법

백영옥 소설가 2022. 8. 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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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오롯이 나를 지키며 살 수 있을까. 나를 지키는 힘은 나로부터 나오는 에너지와 남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 양방향 에너지의 조화에서 나온다. 상대방에게 “오늘 뭐 먹을 거야?”라는 말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관계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에서는 타인에게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타인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방법 중 하나는 ‘선 긋기’다. 미셸 엘먼은 저서 ‘가끔은 이기적이어도 괜찮아’에서 선 긋기에 대해 신발을 신고 내 침대에 올라오거나, 꽃병을 던지는 사람을 가만히 둘 수 있겠냐고 되묻는다. 중요한 건 어떤 집에선 신발을 신고 거실에 들어와도 되지만, 안 되는 집이 있듯 ‘선 긋기’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는 것이다. 선 긋기는 내가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고, 없는지를 타인에게 밝히는 행위로,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외모 비하나 거짓말이 마지노선인 사람이 있고, 예의 없음이나 시간 엄수가 그 선인 경우도 있다.

사람들에겐 사랑받고 칭찬받고 싶은 욕망이 존재한다. 덕분에 우리는 이런 욕망, 즉 칭찬받기 위해 하는 행동을 ‘이타적인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타성이 종종 ‘서운함’을 남기는 건 내 욕구보다 타인의 필요를 먼저 살펴서라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이타성의 이면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 긋는 것’을 이기적인 것, 나만 아는 것이라는 편견을 바꿔야 한다. 선 긋기는 타인을 무시하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타인’이 아닌 ‘나’로 삶의 순서를 바꾸겠다는 자기 선언이자, 타인에게 나를 알리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너와 나는 ‘우리’로 공존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인이 내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그것’을 남에게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지금까지 쌓아온 숱한 오해를 작은 이해들로 바꿀 수 있다. 우리가 남이가? 우리는 남이다. 가까울수록 ‘남’이라는 것을 때론 서늘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아름다운 거리 안에서 ‘친밀한 타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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