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해협' 위기 고조로 신경전 팽팽..아세안 외교장관 회의 폐막

정인환 2022. 8. 5.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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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열린 대면 ARF
미-중 갈등 격화 속 비난전 심화
남-북, 국제무대서 첫 조우도
박진 외교부 장관(가운데)이 5일 캄보디아 프놈펜 소카호텔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 회의가 5일 저녁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폐막과 함께 이틀 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3년 만에 대면 형식으로 열린 이번 회의의 분위기를 개막 직전 터진 대만해협 긴장 고조 사태가 압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이 참석하는 유일한 안보 관련 회의여서 전통적으로 한반도 문제가 주요하게 다뤄졌지만,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오후 회의장인 프놈펜 소카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방문을 빌미로 중국이 4일부터 7일까지 동시다발적 대만 포위 군사행동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중국의 극단적이고 압도적이며 긴장만 고조시키는 군사적 대응은 정당화할 수 없다”며 “중국이 위험천만한 행태를 새로운 수준까지 끌어올렸다”고 비판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도 미국을 겨냥한 맹공을 사흘째 이어갔다. 왕 부장은 이날 비이 타잉 썬 베트남 외교장관,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교장관 등과 연쇄 양자 접촉을 한 뒤 “미국의 행태는 중국의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을 침범했을 뿐 아니라, 지역과 모든 개발도상국의 공동 이익을 해치고, 국제관계의 기본준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또 왕 부장은 “현 대만해협 긴장 국면의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 쪽에 있으며 중국의 대응은 합리적이고 정당하다”며 “미국이 이른바 ‘민주주의’란 모자를 쓰고 이번 소동을 연출했는데, 통일 대업을 이루기 위한 중국의 발걸음에 추호의 영향도 끼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왕이 부장은 이번 회의를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무대로 삼은 모습”이라고 평했다.

주최 쪽인 아세안 나라들은 곤혹스럽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회의 개막에 앞서 아세안 각국은 개발협력을 비롯한 현안과 기후변화와 코로나19 대응, ‘포스트 코로나10’ 경제회복 문제 등을 두고 협력국들과 머리를 맞댈 수 있기를 기대했다. 회원국인 미얀마의 군부 집권세력의 인권 유린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의장국인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가 일부 회원국의 반발에도 직접 미얀마를 방문해 군부 설득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회의 개막을 약 1주일 앞둔 지난달 25일 미얀마 군부가 민주화·인권 활동가 4명을 처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얀마 사태의 쟁점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여기에 회의 개막 직전에 대만해협 위기 고조 사태가 터지면서, 3년 만에 열린 대면 회의를 앞두고 한껏 높아졌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만해협을 둘러싼 ‘신경전’은 아세안 회원국과 대화 협력 상대국 등 27개국 외교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오후 열린 연례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도 이어졌다. <로이터> 통신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발언을 할 때 왕이 외교부장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장내를 벗어났다”고 전했다. 왕 부장은 전날 오전 열린 아세안+3(한 중 일) 회의 때 하야시 외무상과 대만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인 뒤 오후로 예정됐던 중-일 외교장관 회담을 전격 취소한 바 있다.

안광일 북한 주인도네시아 대사 겸 주아세안 대표부 대사가 5일 캄보디아 프놈펜 소카호텔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프놈펜/연합뉴스

한편, 안광일 인도네시아·아세안 주재 북한 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은 “북한이 올해에만 아이시비엠(ICBM) 6발을 포함해 모두 31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다수의 안보리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이 핵 개발을 고집하는 것은 북한 스스로의 안보를 저해하고 고립을 초래하며,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심화시킬 뿐”이라며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로 전환할 경우 우리 정부는 북한 경제와 주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맞서 안 대사는 오커스·쿼드·파이브아이즈 등 미국이 주도하는 소다자 기구를 “새로운 군사블록의 출현”이라며, 미국을 강력 비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미국의 일방주의적이고 자의적 행태가 한반도 일대에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며, 미국을 향해 “이중 기준을 버리라”고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한반도 내) 미국의 전략자산 유입이나 대규모 군사훈련 강행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북한의) 국방력 강화는 자위적 조치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박 장관은 전날 밤 열린 환영만찬에서 안 대사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남북이 직접 대면한 첫 사례다. 외교부 당국자는 “박 장관이 미리 와 있던 안 대사에게 인사를 건네며 ‘(북한) 최선희 외무상에게 취임을 축하한다고 전해달라’고 말했고, 안 대사도 (박 장관에게) 인사를 했다”고 전했다.

프놈펜/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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