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살아있는 법' 이론의 묘수

이지안 2022. 8. 5.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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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화산이 활화산이 됐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사상 두 번째 '재판취소'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지난달 또다시 대법원의 재판을 취소했다.

한정위헌 결정을 둘러싼 헌재와 대법원의 갈등이 1997년 이후 25년 만에 재점화한 것이다.

헌재가 1956년 '해석적 기각판결(한정합헌 결정)'을 통해 법원의 법 해석 방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자, 대법원이 이를 독립성 침해라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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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화산이 활화산이 됐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사상 두 번째 ‘재판취소’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지난달 또다시 대법원의 재판을 취소했다. 대법원은 “사법권 독립 침해”라며 반발했다. 한정위헌 결정을 둘러싼 헌재와 대법원의 갈등이 1997년 이후 25년 만에 재점화한 것이다.

한정위헌이란 헌재가 어떤 법률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제시하고, 그 해석기준에 어긋날 경우 위헌이라고 선언하는 결정이다. 대법원은 이 한정위헌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헌법과 법률에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고, 법률에 대한 해석은 전적으로 법원의 권한이라고 주장한다. 대법원은 “헌재와 대법원은 상호 독립적인 관계에 있는 동등한 기관”이라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권한을 통제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지안 사회부 기자
이 때문에 한정위헌 갈등을 해결할 가장 깔끔한 방법으로 개헌이나 입법이 거론된다. 아예 한쪽에 권한을 몰아주는 방향으로 ‘교통정리’를 하자는 거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처럼 대법원이 법률의 위헌심사권까지 가져야 한다거나, 독일의 연방헌재처럼 헌재가 법원의 재판까지 심사하는 최고기관이 돼야 한다는 식이다. ‘수평관계’에서 ‘수직관계’로의 변화다. 

기자가 만난 한 법조인은 이 방식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대법원과 헌재가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경쟁 관계에 있는 지금이 나쁘지 않다”고 했다. 한정위헌 갈등의 불씨가 살아있으면 대법원은 보다 신중한 법 해석을 내놓게 되고, 헌재의 권한도 지금 수준에 그쳐야 법원의 재판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는 갈등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고 강조하며 “내가 헌재와 법원 모두에 몸담아봐서 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에 더해 개헌이나 입법 없이 갈등을 해소한 이탈리아 사례를 소개했다. 이탈리아 헌재와 대법원도 법률 해석 권한을 둘러싸고 우리와 유사한 갈등을 겪었다. 헌재가 1956년 ‘해석적 기각판결(한정합헌 결정)’을 통해 법원의 법 해석 방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자, 대법원이 이를 독립성 침해라며 반발했다. 이어 헌재의 해석을 거부하고 법원의 해석을 고수했다. 그러면 헌재는 그 법원의 해석에 다시 ‘해석적 인용판결(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갈등은 수십 년에 걸쳐 반복됐다. 

이를 해결한 묘수는 ‘살아있는 법’ 이론이다. 살아있는 법이란, 법 문구뿐 아니라 그에 대한 법원의 해석까지 모두 법으로 봐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탈리아 헌재는 이 법 이론을 받아들였다. 법원의 해석이 존재하는 한 더는 독자적 법률해석을 내놓지 않았다. 법원의 해석이 없을 경우 헌재가 법률해석을 할 수 있지만, 그 해석을 법원이 따라야 할 의무는 없음이 명백해졌다. 법과 법률해석을 분리할 수 없단 대전제 아래, 헌재의 법률(해석) 심사권을 인정하는 대신 법률해석은 법원의 전권임을 명확히 한 방식이다.

한정위헌 갈등을 두고 ‘답 없는 문제’라고들 한다. 어쩌면 답은 아주 가까이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우리 대법원과 헌재가 서로 최고 사법기관이 되겠다는 욕망 때문에 ‘정답 찾기’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이지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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