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은 곳에서 일하기 vs 일하고 싶은 곳에서 살기[탈서울 라이프③]
“살고 싶은 곳에서 일하기요. 근데 그건 일하고 싶은 곳에서 살아봤으니까요. 18년 동안 서울에서 일하며 살아봤기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스무살에 같은 질문을 받으면 ‘일하고 싶은 곳에서 살기’를 선택하지 않을까요.” 2019년 강원도 양양군으로 이주해 이 곳에서 4년째 사는 김희주씨(39)의 말이다.
희주씨는 2016년 양양에 여행왔다. 아파트 모델하우스 광고 현수막을 보고 ‘구경이나 해볼까’하는 마음으로 들어섰다. 덜컥 30분 만에 집을 사버렸다. 희주씨는 양양이 바다 근처라는 것 말곤 아는 게 없었다. “충동 구매로 집을 사서요. ‘집을 샀으니까 지방에 가야겠다’ 생각했어요. 세컨하우스 개념이 아니라 서울에 살고 있던 집 전세금을 빼서 전 재산으로 사야 했으니까요.”
고민은 그 후 몰려왔다. ‘그래서 나는 이제 어떻게 살지? 뭐 해서 먹고 살지?’
서울에서 잡지사 기자, 광고 기획자 등으로 일했던 희주씨가 양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줄 몰랐어요. 업무 자체는 능숙하게 하는데 ‘조직 생활을 하는 건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그런 고민이 약간 사치스러운 고민이 되는 거죠. 지방의 조직 문화라든지 일의 방식이라든지 그런 것도 일하고 있어야 할 수 있는 고민인 거잖아요.”
결국, 지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자영업밖에 없던 것일까.
아파트가 완공되기 전까지 2년 동안 희주씨의 남편은 목공을 배웠고, 이주 후 양양에 가구 공방을 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녹록지 않았어요. 3년 만에 폐업합니다. 다행히 서울에서 제가 프리랜서 일을 오래 한 덕분에 양양에 와서도 프리랜서로 서울의 일을 할 수 있었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죠. 이마저도 서울에서 상호 간에 쌓인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죠.”
4년차 양양군민 희주씨는 자신의 경험을 엮어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책을 냈다. 지방 이주 청년들을 인터뷰해 <지역에서 일하는 기쁨과 슬픔>이란 연구보고서도 발간했다. 기간제 근로자이긴 하지만 작년부터 양양군 도시재생지원센터 팀장으로 일을 시작했고 올해 사무국장을 맡았다.
희주씨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은 외면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한다. 내가 살고 있고, 내가 살아가야할 곳이어서다. “(지방 소멸은)시작됐고 사실 막을 수도 없고, 소멸하더라도 조금 덜 거친 방식으로 덜 상처받으면서 잘 소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일자리와 인프라가 부족한데 ‘지방에 와서 살아’라고 할 수 없죠.”
희주씨는 지방소멸을 막는 대안 중 하나가 ‘관계 인구’라고 본다.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정주 인구’와는 다른 개념이다. “지역에 정착해서 살지 않더라도 그 지역의 농산물을 소비하거나 여행, 방문 등을 계기로 그 지역을 좋아하게 돼 빈번히 방문하는 관계인구와 지방에서 일과 휴식을 병행하는 워케이션 인구를 늘려야 해요. 양양을 포함해서 영동지방 지역들이 가진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죠. 그 과정에서 스스로 거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희주씨는 ‘지방에 살면 좋아요’라거나 ‘지방에 살면 힘들어요’라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지방에서 살아도 된다’고 말한다. 희주씨의 이야기는 경향신문 유튜브 채널 <이런 경향> 탈서울 라이프 시리즈에서 만날 수 있다.
유명종 PD yoop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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