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일본의 아름다움, 경계에서 바라보다

박대의 2022. 8. 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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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 도널드 리치 지음 / 박경환·윤영수 옮김 / 글항아리 펴냄 / 1만9000원
한국 문화는 '한류'나 'K컬처'라는 이름으로 동양을 대표하는 문화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는 영화가 있다.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이제 한국 영화가 후보에 오르지 않는 곳이 없다. 한국 영화는 높은 완성도로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적이면서도 지역을 불문하고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요소들이 반영돼 이방인들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한국의 자리는 일본이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세계가 주목한 아시아 영화는 주로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 나루세 미키오, 구로사와 아키라 등 일본 영화계 4대 거장으로 불린 감독들의 작품은 서양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움을 선사했다.

일본 영화를 전 세계적으로 알린 인물이 도널드 리치다. 1924년 미국 오하이오 리마에서 태어난 리치는 1946년 22세 나이에 연합군 최고사령부(GHQ) 군무원을 시작으로 8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삶의 대부분 시기를 일본에서 보냈다. 인구 5만명의 소도시 리마가 답답했던 그에게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다시 살려보겠다며 발버둥 치는 일본은 모든 것이 탐구 대상이었다. 리치는 미 육군 신문 '퍼시픽 성조기'에 필진으로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도시와 사찰, 정원, 음식 등 일본의 사회와 문화를 적극 서양 사회에 소개했다. 특히 영화평론가로서 그의 활동은 일본 영화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매개체가 됐다. 1977년 출판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세계'는 사람들이 오즈의 영화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책으로 꼽힌다.

도널드 리치의 초상화. [사진 제공 = 글항아리]
리치를 사로잡은 일본 영화의 매력은 무엇일까. 리치는 1974년에 남긴 '일본 영화에 대한 어떤 정의'에서 일본 영화가 특정한 환경에서 특정한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정취'를 다루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정취'는 미국 영화가 다루는 '행동'과 유럽 영화가 다루는 '캐릭터'가 조합된 것이다. 서양에서 개인은 각자가 우주의 중심이 되는 고유한 존재로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지만, 일본에서 개인은 자연과 보완적 관계를 맺으며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에 있는 한 부분이다. 달갑지 않은 자연이라도 존재하는 이상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의 습성은 영화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촬영 공간을 제한하는 것은 그 특성을 잘 살리는 방법 중 하나다. 도요다 시로 감독의 '묵동기담'(1960)은 한 채의 집 안에서 영화의 주요한 전개가 일어난다.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 관객들은 집에 사는 여인을 통해 집 위아래층을 세세하게 알게 되고, 어느새 여인에게도 친숙함을 느끼게 된다. 명확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실감 있는 이야기가 이 영화만의 정취를 만들어 낸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살다` 포스터.
일본 영화 속에 드러나는 일본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개념도 리치의 눈에는 새로웠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살다'(1952)에서 장례식은 주인공의 집에서 이뤄진다. 일본 장례 예식의 가정적인 측면은 일본인들이 죽음을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일이라고 여긴다는 점을 설명한다.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은 저자가 1960년대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50년간 남긴 일본에 관한 산문 중 20편을 골라 번역한 책이다. 산문은 저자의 전공인 영화와 관련된 4편을 비롯해 문자, 파친코, 패션 등을 주제로 다룬다. 리치는 자신이 탐구한 일본의 아름다움은 일본인들이 스스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옆에서 보아야만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영국 소설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의 말을 인용하면서 경계인으로서 일본을 들여다본 자신만의 미학적 시각을 독자와 공유한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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