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카지노 올리는 타워크레인이 하늘 덮을 때..그때가 '거품'

김슬기 2022. 8. 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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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더 콜린 씨의 일일 / 콜린 랭커스터 지음 / 최기원 옮김 / 해의시간 펴냄 / 1만8800원
매크로 트레이더는 돈다발을 돈더미로 만드는 일을 한다. 콜린 랭커스터는 한때 잘나갔지만 슬럼프에 빠진 월가의 베테랑 헤지펀드 트레이더다. 시타델, 발야스니를 거쳐 마타도르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지냈고, 숀펠드 스트래티직 어드바이저스에서 글로벌채권 책임자로 일한다.

돈을 굴리는 건 똑같지만 뉴욕 양키스의 주전 유격수에서 몇 등급이 내려와 그저 패밀리 오피스의 자산관리사가 됐다. 흰머리가 성성한 중년 트레이더는 업무시간보다 사케와 초밥을 먹을 회식을 더 기다린다.

이 책은 2019년 10월부터 9개월에 걸쳐 런던과 월가를 오가며 시장에서 벌이는 사투를 소설처럼 맛깔나는 필력으로 기록한 논픽션이다. 탐욕이 유행이 되고 게임처럼 투자하는 시대의 충실한 초상이기도 하다.

콜린의 일상도 개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롬 파월이 또 무슨 발표를 할지 뉴스를 들여다보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막말을 쏟아내는 트위터에 가슴 졸인다.

2019년 10월은 연방준비제도의 발권력에 힘입어 장이 끝이 보이지 않게 오르던 시기. 금융위기 이후 500% 넘게 상승한 장세를 보며 콜린은 장기적으로 안 좋을 것 같다는 찝찝함을 마음 한구석에서 느낀다. 칼날 끝에 아슬아슬하게 앉아 있는 기분이다.

매크로 트레이더는 비관적인 경향이 있다. 투자자들은 시장이 최악일 때도 매크로 트레이더가 최고의 실적을 거두길 기대한다. 그래서 '블랙 스완'을 쫓는 나심 탈레브처럼 문제적 상황 찾기에 급급하게 된다. 게다가 2008년을 기점으로 고리타분한 투자 방법은 용도폐기됐다. 정보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대상이 됐고, 각국 중앙은행은 일제히 태세 전환을 했다. 전략이 넘쳐나고 퀀트가 등장했다. 초과수익을 내기 위해선 처절한 노력이 필요해졌다.

부하 직원 제리처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세대는 위기 이후의 10년을 성장 침체기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10년이나 이어진 전례 없는 버블의 시기였다. 평평해진 채권수익률 곡선도, 환율도 미국 시장에선 문제 될 게 없었다. 연준의 대차대조표 숫자가 커지는 한 파티는 계속된다.

직원들과 콜린은 휴식과 정찰을 위해서 라스베이거스에 간다. 이 도시는 어느 지역보다 거품이 잘 생기고 잘 붕괴되는 미국 경제의 척도다. 콜린은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새 카지노를 올리는 타워크레인으로 하늘이 뒤덮인 걸 발견했다. 클럽 입장료와 테이블 값도 사상 최고가였고 집값도 2008년을 뛰어넘었다. 스트립 댄서들이 부동산을 사진 않았음을 확인했지만, 그는 거품 시대의 징후를 발견했다. 콜린은 "2010년대는 1850년대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 경기 침체가 전혀 없던 10년이었다. 그렇다면 그 대가는 언제 치를 것인가?"라고 질문한다. 시장의 반전은 누구도 예상 못한 방식으로 찾아왔다.

책의 백미는 흥청망청 낙관론에 빠져 있던 월가가 코로나19 대폭락을 맞는 시기를 묘사하는 지점이다. 혼돈의 장에서는 전지전능해 보이던 월가의 '인싸'조차도 무력하게 도륙을 당한다. 불확실성 속에서 헤매고 고민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만다.

중국발 뉴스가 하나둘 들려오던 2월, 미국의 첫 사망자가 나온 주간부터 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자유낙하를 시작한다. 이후의 트레이딩룸은 전쟁터와 다름없다. 새로운 하루는 전 저점 경신의 날이다. 24시간 쉴 새 없이 회의를 열고 정부 대책과 보건 정책을 분석한다. 콜린은 바이러스가 우리의 죄를 폭로했다고 진단한다. 부채 거품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손바닥으로 가리려 했지만 거품은 이제 터지고 싶어 한다.

5주간의 지옥을 통과한 뒤 연준은 무제한 양적완화를 발표했다. 곧이어 민주당이 2조5000억달러 지출 법안을 제안하면서 마침내 다우지수는 11.4% 반등하는 데 성공했다. 여전히 백신은 없고 경제는 셧다운됐으며 대공황 때만큼 실업률은 높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난 10년간 자신들의 최악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연준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시장을 너무 부정적으로 예측한 것을 말이다. 미국의 실업자가 2200만명을 돌파한 극심한 공포 속에서도 그는 베팅해보자는 생각을 한다. 이들은 매수 버튼을 누른다.

인물들의 대화에선 2년 뒤를 예견한 듯한 장면이 나오는 것도 흥미롭다. "연준은 가히 상상도 못할 막강한 권력을 보유하고 있어. 역사적으로 더 많은 통화를 창출할 때마다 인플레이션이 초래되었으니까. 인플레이션은 무서운 거거든. 인플레이션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전염병 같기도 해. 인플레이션은 혁명이나 심지어 전쟁도 일으켜." "양적완화는 엄청난 규모로 부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역사상 가장 큰 강도 행각이다."

속도감 넘치게 달리던 이야기는 아쉽게 2020년 6월 막을 내린다. 이후 시장은 크게 반등했고 빈부격차는 더 커지며 역사상 가장 큰 '부의 이동'이 일어났다. 돌이켜보면 코로나19를 맞이한 첫해는 대혼돈의 맛보기편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콜린 씨의 대폭락 생존기를 엿보는 재미는 충분하다. 원제 FED UP!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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