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의 티키타카( 36화)[연재소설]

에린 2022. 8. 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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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은 동호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축하 인사와 함께 꽃다발을 가슴에 안았다. 기념촬영이 끝나자 사람들은 흩어져 전시회를 둘러봤다. 몇몇 관람객들이 도경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며 다가왔다. 그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싫지 않은 눈치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노란색 스카프를 길게 늘어뜨린 여자가 도경에게 말을 걸었다.

“저도 하늘정원에 갔다 온 적이 있는데, 실사보다 사진이 훨씬 드라마틱하네요.”

“감사합니다.”

도경은 자신과 사진을 찍으러 온 관람객이라 생각하고 여자 옆에 나란히 섰다.

“아니요. 저는.”

여자의 말에 도경이 민망해하자 서둘러 명함을 건넸다.

도경은 명함에 ‘렌즈아트’라는 잡지사 이름을 보고 며칠 전 인터뷰 약속을 했던 게 생각났다.

그녀는 어느새 사진 앞으로 다가가 안경을 이마 위로 올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의 안녕이라, 다른 입상작들하고 확실히 다르네요. 차별화 전략인가요?”

“네?”

도경은 기자의 질문에 당황했다.

“공모전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작가의 개념이나 의식이 렌즈에 걸려야 하잖아요. 전달하는 메시지도 있어야 하고. 그렇게 보면 작가님의 작품은 뭐랄까, 개념이나 의식보다는 감정에 더 충실했던 것 같은데요. 결혼하셨어요?

기자는 핸드폰으로 메모하며 상투적으로 물었다.

“개념이나 의식 좋죠. 하지만 그런 건 사진이 아니어도 우리 일상에서 항상 마주치는 것들이잖아요. 이제 개념이나 의식이 지식인의 무기처럼 여겨지던 때가 아니거든요. 그런 사진을 기대하셨다면 SNS를 보시는 게 나을 겁니다.”

도경의 말에 기자는 메모를 하다가 멈칫했다.

“아, 오해가 있었나 보네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언짢았다면 미안합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사진을 보고 수군거리는 사람들보다는 솔직하신데요. 사람들은 야경에 눈이 먼저 갔다가 여자에 대해 궁금해해요. 도시 속 야경은 아름답지만, 인위적인 불빛이 순수하다고는 볼 수 없죠. 한 여자의 뒷모습에서 그녀의 삶이 투사된 것처럼 느꼈어요. 누구나 자기만 아는 진실이 있잖아요.”

“그럼, 유리창에 흐릿하게 비친 여자의 얼굴은 의도하신 건가요?”

도경은 사진으로 다시 한번 눈길을 돌렸다.

“우연히 보게 됐어요.”

기자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사진 속의 여자분은 아는 분인가요?”

“제가 안녕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아… 그렇군요.”

기자는 눈동자를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경은 기자 뒤로 전시회 안내 책자를 보고 있는 남녀를 보았다.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보며 연신 말을 건넸고 여자는 책자만 들여다봤다. 여자가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올릴 때 도경의 시선이 멈춰졌다.

“작가님?”

기자가 도경의 눈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바쁘신 것 같은데, 보충할 내용이 있으면 따로 연락드려도 되겠지요?”

“그럼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도경은 남녀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유세라 씨?”

세라와 강호가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세라의 눈동자가 커졌다. 전시회에서 도경을 만나다니 믿기지 않았다.

“오래간만이에요.”

그녀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잘 지냈어요?”

도경이 어린아이를 보듯 세심하게 세라를 살폈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깊은 눈을 지나 귀 뒤로 넘긴 머리카락으로 찬찬히 내려갔다.

“입상하신 거 축하….”

세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시회 입구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도경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도경은 그들에게 기다리라며 손짓했다.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세라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갈 거예요? 시간 괜찮으면 커피 마시고 갈래요? 함께….”

도경은 상기된 표정으로 강호에게도 의중을 물었다.

강호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낮게 말했다.

“난 괜찮아.”

“저는 하도경이라고 합니다.”

도경이 강호에게 악수를 청했다.

“한강호입니다.”

강호는 둘만의 공간에 끼어든 이방인이 된 듯 아무 말도 못 했다.

세라는 강호와 함께 전시회장을 빠져나와 근처 카페로 갔다.

도경을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한테 둘러싸인 그를 떠올렸다. 그는 이제 매일 아침 커피를 시켜놓고 마른 헝겊으로 카메라를 닦던 고집스러운 곱슬머리의 남자가 아니었다. 움츠려 있던 어깨는 넓어졌고 손목에는 검은색 고무줄 대신 가죽 시계가 그의 손목에서 움직였다. 매일 윤이 나게 문지르던 카메라는 결국 알라딘의 램프처럼 그의 바람을 들어주었다. 대상작이라는 타이틀 아래 ‘당신의 안녕’이란 문구가 야경보다 더 선명한 불빛을 품어내고 있었다.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꽃다발도 그의 사진 앞에서 빛났다. 세라는 사진 속 여자가 자신이라는 걸 확신했다.

주문 벨이 번쩍거리며 테이블 위에서 지글거렸다.

“하도경 작가는 어떻게 알아?”

강호가 세라 앞에 커피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오사카에 있을 때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살았었어.”

세라는 휴지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옆집 사람?”

강호는 넌지시 세라의 눈치를 살폈다.

세라는 멍한 눈빛으로 커피를 마셨다. 강호는 그런 세라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도경이 세라를 바라보던 눈빛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말이 없었고 할 말을 찾으려는 듯 카페 안을 두리번거렸다. 손부채를 얼굴에 들이댔다.

“왜 그렇게 땀을 흘려.”

강호는 그런 세라가 산만해 보였다.

“좀 답답해서 그래.”

그녀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얼굴에 촘촘히 올라 온 식은땀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세라는 뒤통수에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따가운 통증과 뜨거운 열감을 느꼈다. 순간 전기가 온몸을 관통하고 회오리처럼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어? 코피!”

강호가 세라의 인중 사이로 번지는 피를 보고 휴지를 뭉텅이로 만들어 그녀의 코에 갖다 댔다. 세라는 피가 묻은 손을 조금씩 떨었다.

“괜찮아.”

강호는 세라가 당황해하자 그녀의 손을 잡았다.

코피는 멈추지 않았다. 휴지 뭉텅이가 빨갛게 젖어 들어갔다.

“어지러…워.”

“괜찮아? 세라야, 유세라!”

세라는 창백해진 얼굴로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강호는 세라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정신 좀 차려봐. 안 되겠다. 병원 가자.”

세라는 힘없는 목소리로 그의 손등을 잡았다.

“그냥 한신병원으로 가줘.”

“한신병원?”

강호는 핸드폰으로 한신병원을 검색했다.

카페 문이 열리면서 도경이 들어왔다. 세라를 발견하고 미소를 띠었다. 다가오던 도경은 테이블에 떨어진 핏자국을 보며 웃음기를 거뒀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도경은 병원을 검색하고 있는 강호를 밀치며 축 처진 세라를 둘러업었다.

“세라 씨! 정신 좀 차려봐요.”

칼날 같은 저녁이었다. 무엇이라도 베지 않으면 아침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세라는 밤하늘의 별빛처럼 나리던, 눈의 속살이 그의 가느다란 눈썹에서 희미하게 떨리던 그날 밤을 기억했다. 마지막이었던 뜨거운 포옹은 꺼지지 않는 작은 불씨를 아직도 태우고 있었다.

세라의 눈에 하얀 천장에 알처럼 박힌 전구가 여러 개 보였다. 갑자기 전구의 불빛이 어두워지며 정 박사의 얼굴이 나타났다.

“유세라 씨, 정신이 들어요?”

정 박사는 세라가 의식이 돌아오자 상태를 확인했다.

“네. 여기가.”

“여기, 응급실이지. 이거 서운한데요. 응급실에나 와야 얼굴을 볼 수 있네.”

정 박사는 강호를 등지고 서서 세라에게 입 모양으로 물었다.

“누구?”

“친구예요.”

세라는 민망한 마음에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손등에 꽂힌 링거 바늘이 움직여 욱신거렸다.

“빈혈이 아주 심해요. 철분 약을 처방해줄 테니까 잊지 말고 먹어요. 두 달 후에 다시 피검사 해봅시다. 다른 증상은 어때요.”

“괜찮아요.”

정 박사는 세라를 찬찬히 훑어보다가 외래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당부하며 돌아갔다. 세라가 침상에서 일어나자 뒤로 물러서 있던 강호가 심상치 않은 얼굴로 다가왔다.

“우리 얘기 좀 해.”

세라는 강호의 말에 되물었다.

“도경 씨는?”


■에린은 누구?

본명은 조선희다. 2020년 단편소설 ‘해시태그, 스타북스’를 한국문예에 발표했으며, 2021년 ‘바오밥 나무’를 동 문예지에 발표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소설 아카데미와 동인회 청맥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에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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