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 투석 바늘 꽂은 채 탈출했다"..긴박했던 이천 병원 화재 현장

4층 병원 환자들 창문 통해 구조.. 투석 전문 병원인 탓에 대피 늦어진 듯

5일 오후 2시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의 한 빌딩 앞. 깨진 유리 파편들이 인도를 한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 17분 건물에서 불이 나면서 4층 투석 전문 병원에 있던 환자들이 창문을 통해 구조된 흔적이었다. 건물 주변엔 여전히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다. 건물 안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은 빌딩 건너편 길가에서 수습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5일 오후 2시 이천 관고동의 병원 화재 현장, 사상자들의 탈출 통로가 된 창문의 모습./김민소 기자

불이 난 건물 1층에서 가전 판매를 하던 양모(40)씨는 소방벨이 울리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 건물 전체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고 했다. 양씨는 “처음 소방벨이 울렸을 때는 잘못 작동한 줄 알았는데 얼마 뒤 천장에서 새카만 연기가 새어 나오는 걸 보고 뛰쳐나왔다”며 “같은 시각 건물 1~3층 사람들이 모두 우수수 빠져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뒤이어 건물 4층 투석 전문 병원 환자들이 투석 바늘을 꽂은 채 엘리베이터에서 탈출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는 “환자들이 바늘도 채 빼지 못하고 건물 계단과 엘리베이터에서 뛰쳐나왔고, 간호사들이 구조를 요청하는 소리와 대피 경로를 알리는 외침도 얼마간 지속됐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같은 건물 2층 한의원에 진료를 받으러 온 박모(60)씨는 “건물에 도착했을 당시 진화 작업이 한창이었다”고 말했다. 건물 3~4층 창문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나왔고, 건물 오른쪽 주차장에선 시신 수습이 진행 중이었다고 상황을 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 위에 헬기도 도착하면서 순식간에 수십 대의 소방차들이 건물 주변을 에워쌌고 창문을 통해 환자들이 한 명씩 빠져나왔다고 했다.

건너편 건물 1층에서 건강기능식품 판매점을 운영하던 60대 이모씨는 4층 간호사들의 대피 모습을 설명했다. 이씨는 “4층 창문에서 유독 가스가 쉼 없이 나오는데도 간호사들이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간호사들은 환자들을 먼저 내보내고 뒤이어 대피가 어려운 환자들을 데리고 차례로 건물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5일 오후 2시 이천 관고동 병원 화재 현장을 찾은 김동연 경기 지사와 이천소방서장./김민소 기자

이날 화재로 환자 4명과 간호사 1명이 숨졌다. 투석 전문 병원인 탓에 환자들의 대피가 쉽지 않아 피해가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장재구 이천소방서장은 “환자들은 투석 중이었기 때문에 바로 대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사망자들은 질식해 숨졌을 것으로 보이는데 투석 환자여서 사인은 복합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0시 17분 발생한 화재는 총 49명의 사상자를 냈다. 경찰은 불이 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이날 오후 3시부터 합동감식을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화재 현장에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찾았다. 김 지사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바로 왔다”며 “신속하게 화재 진압을 했지만 사망자가 발생한 것에 유감을 표하고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그는 “사전 예방에 최선을 다하고 이 같은 안타까운 일이 생길 때 초기에 해결하도록 도민 안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상민 장관도 “지자체, 소방, 경찰 등 모든 행정력을 총 동원해 사상자와 피해자 가족 지원 등 화재사고 수습을 위한 제반 조치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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