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강태오, 박은빈의 '공감부재' 넘어 '연탄 한 장' 될까?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2. 8. 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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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이준호씨는 고래도 아닌데 마치 고래처럼 제 머릿속에 불쑥불쑥 떠올라요. 자꾸만 보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인간은 처음이라서 너무 이상합니다.”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박은빈 분)가 기분 좋은 혼란에 휩싸였다. 이준호(강태오 분)가 빨리 보고싶어 회사 정문까지 가 기다리고, 사무실 블라인드를 젖혀 지켜보고, 유리창을 짚은 그의 손바닥에 맞춰 손도 대어본다.

분명히 솟구치는 감정이 있는 건 분명한데 표현할 길이 없다.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이 감정의 정체가 뭘까?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일까? 불확실하다.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표현한 것이 지금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정확하고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데 찾을 수가 없다. ‘맥락’이란 말이나 ‘분위기’란 말은 사전에 있어도 어려운데 이 감정에 적절한 한마디는 사전에서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아버지 우광호(전배수 분)가 “사귀는 사람 있냐?”라고 물어왔을 때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우린 한번도 사귄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놀렸다. “그런데 키스를 하냐? 우리 딸이 몰랐는데 헐리우드네. 아메리칸 스타일이야”했다. 집 앞에서 이준호씨와 키스한 걸 보셨단다.

이준호씨가 다시 집까지 바래다 줬을 때 그 이야길 했다. “아버지가 이준호씨를 집에 데려오라고 했지만 나는 데려가지 않을 겁니다. 우린 아직 사귀는 사이가 아니니까요”라고 하니까 이준호씨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어왔다. “우리 사귀는 거 아니예요?”

“그런 말 한 적 없지 않습니까? 그럼 우리 사귀는 겁니까?” 물었더니 이준호씨 표정이 울 것 같이 변했다. “사귀는 게 아니예요?..정말..참..너무 섭섭합니다.” 왜 섭섭하지? 아, 그럼 우리는 사귀는 거였구나! 맞다. 우린 데이트도 했다. 데이트란 이성끼리 교제를 위해 만나는 일이고 여기서 교제란? 그렇다. 사귀는 거였다.

근데 데이트 이야길 하면서 이준호씨가 좀 격앙됐다. “ "사귀는 게 아니면 내가 왜 쉬는 날에 고래 해방 시위를 합니까?”이준호씨는 고래 해방을 원하긴 하지만 쉴 때 할만큼 재밌지는 않다고 했다.

한강 조깅에 대해서도 그랬다. 한강변서 조깅하며 쓰레기를 줍기로 했는데 이준호씨는 “변호사님은 정말 쓰레기만 주웠잖아요. 바구니가 가득 차도록!” 원망의 포인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데이트는 교제를 위한 건데 확실히 그날은 쓰레기만 주웠다.

그렇지만 우리는 분명 맛집투어도 했다. 아, 김밥집만 찾아다녔구나! 이준호씨는 다른 것도 잘 먹는데... 참 이준호씨가 원하는 오락실도 갔는데? 아, 내가 잘하는 틀린 그림 찾기만 해서 이준호씨는 재미없었구나!

갑자기 궁금해진다. “근데 왜 재미도 없는데 같이 했습니까?” 이준호씨가 급기야 화를 냈다 “좋아하니까요! 내가 변호사님을 좋아하니까요!” 아, 좋아하니까! 나를 좋아하니까! 가슴이 간질간질하다. 또다시 뭔가가 솟구치는 기분이다. 이준호씨는 화를 내는데 어쩐지 그 화가 난 ‘맥락’을 알 것도 같다. 무엇보다 그는 화를 내는데 나는 왜 달근달근해지는 걸까?

우영우가 기분좋은 혼란에 휩싸일 즈음 이준호는 허탈한 심경으로 혼란스럽다. 우영우 변호사는 말했었다. “저와 하는 사랑은 어렵습니다.” 인정했다. “네 그런 것 같아요.” 우변이 물어왔다. “그래도 하실 겁니까?” 대답했다. “네!”

그렇게 시작된 연애였다. 그런데 정말, 정말 우영우를 사랑하기는 힘들다. 아무리 노력해도 동화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쯤하면 내 마음 알아주겠지’ 싶은 순간이면 어김없이 카운터펀치가 날아온다. 한강변서 함께 조깅하면서 강변 청소도 좀 하기로 했다. 기대컨대 같이 땀을 흠뻑 쏟은 후 땀도 식히며 도란도란 웃고 얘기하면서 쓰레기 좀 줍는 장면을 떠올렸었다. 근데 나타난 우변호사는 넝마주이처럼 등바구니를 둘러메고 장갑 낀 손에 집게까지 든 채 나타났다. 그 날, 그 황금같은 휴일을 등바구니가 가득차도록 쓰레기만 주웠다.

고래해방운동땐 고래 분장을 하고 전단지를 나눠주며 시위를 했었다. 그 휴일도 그렇게 딱 고래해방에만 몰두하다 끝났다.

그나마 우영우변호사의 데이트 버킷리스트에 ‘맛집투어’가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그래서 이 김밥 저 김밥, 주구장창 김밥만 먹고다녔다.

어쩐 일로 내가 제안한 오락실 데이트에도 나서줬다. 그 망할 오락실에 틀린 그림 찾기 오락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수많은 오락기를 두고도 주야장천 틀린 그림 찾기만 할 줄도 몰랐다. 한 번이라도 이겼다면 말도 안한다. 범접불가의 속도로 클리어해가는 그 눈부신 눈놀림, 손놀림이라니...

어쨌거나 그런 희생 모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우영우란 여자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녀는 존재 자체로 지루하고 신물 나는 시간들을 충분히 보상해 주었었다.

그런 그녀의 예쁜 입술이 청천벽력같은 날벼락을 날린다. “우린 아직 사귀는 사이가 아니니까요.” 사귀는 사이가 아니니까요? 그럼 우린 뭐한건데? 아니 도대체 정말로 쓰레기만 줍고, 고래 해방 운동만 하고 생목 오르도록 김밥만 먹은 건가? “아직 사귀는 사이가 아니니까요?” 정말 울고싶은 이준호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자폐의 그늘 중 하나가 ‘공감능력 부재’다. 우영우와 이준호가 연애를 시작하며 무지개빛 동화는 끝났다. 두 사람의 연애는 다사다난한 운명이 소용돌이치는 현실에 접어들었다.

미르생명 성차별적 구조조정 재판에 나선 상대측 변호인 류재숙(이봉련 분) 변호사를 우영우는 이제는 자연상태에서 관측 안되는, 자연상태서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양쯔강 돌고래’에 비유했었다.

‘공감능력 부재’라는 자폐스펙트럼의 그물망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우영우-이준호의 사랑도 양쯔강 돌고래와 같은 운명을 맞을 지도 모르겠다.

마침 패소 뒷풀이에 나선 류재숙 변호사가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을 낭송한다.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과연 이준호는 우영우가 걸어갈 미끄러운 길을 안전하게 만드는 연탄 한 장이 될 수 있을까? 이들 고래커플의 앞날이 궁금해진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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