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붙은'임금피크제' 소송..왜 은행이 유독 많을까?

조해람 기자 2022. 8. 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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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 노조원들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 앞에서 열린 KB국민은행 ‘불법적 임금피크제’ 규탄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갈등이 곳곳에서 확산하고 있다. 특히 임금피크제가 보편화된 은행 노동자들의 불만섞인 목소리가 크다. 지난 5월 대법원이 ‘연령만을 이유로 한 임금피크제는 차별’이라는 판례를 내면서 소송전에도 불이 붙는 모양새다.

KB국민은행노조는 지난 4일 서울서부지법에 사측을 상대로 ‘임금피크제로 삭감된 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는 KB국민은행 현직자 35명과 퇴직자 5명 등 40명이 참여했다.

KB국민은행은 2008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노사는 만 56세부터 정년인 만 60세까지 4년간 임금을 차례대(60%→55%→50%→50%)로 삭감하고, 해당 직원은 단순 업무를 맡거나 업무량을 줄이는 쪽으로 합의했다.

노조는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들이 현장 창구업무 등 기존 업무를 그대로 하면서 임금만 삭감됐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노사는 임금피크 직원의 직무를 관리 또는 관리담당 등 후선업무에 국한하기로 했으나 사측은 이 합의를 위반하고 적지 않은 직원들에게 현업 업무를 그대로 부여하고 있다”고 했다.

류제강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현업 업무를 그대로 하면서 임금피크 적용을 받는 사례는 현재 133명까지 파악됐다”며 “일차적으로는 증빙자료 등 검증된 인원을 중심으로 소송을 했고, 피해 사례가 더 모이면 추가 소송에도 나설 수 있다”고 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다른 은행에서도 임금피크제 갈등이 계속됐다. 지난해 1월 IBK기업은행 현직자·퇴직자 470명은 사측을 상대로 임금피크제 무효와 235억원의 삭감 임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산업은행 시니어노조도 2019년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을 제기해 소송전이 진행 중이다. 한국노총 전국금융산업노조는 다음달 16일 총파업에 들어가기 위해 조합원 찬반투표를 준비 중인데, 임금 인상·해고 간부 복지 등과 함께 임금피크제 개선도 요구조건에 올라 있다.

금융계는 유독 임금피크제 도입 비율이 높다. 금융업 사업장 3만1533곳 중 임피제를 도입한 곳은 67.2%인 2만1187곳에 달한다. 정년제를 운용하는 전체 기업 중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은 22% 뿐이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전체 직원 대비 임금피크제 적용자 비율은 시중은행의 경우 국민은행이 2.3%, 우리은행 2.1%, 신한·하나은행 0.1%였다. 국책은행에서는 산업은행 8.9%, 기업은행 7.1%, 수출입은행은 3.3%로 적용자 비율이 더 높았다.

최근 대법원이 내놓은 판례로 이런 흐름은 더 가속화됐다. 지난 5월26일 대법원은 A씨가 직장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소송 판결하며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한 임금피크제는 차별”이라고 판시했다. A씨의 정년 연장 등 보상이 없었던 점, 업무량이나 강도가 줄었다는 증거가 없는 점 등이 근거가 됐다. 사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KB국민은행노조도 이 판결 이후 소송 참여인단을 모집했다. 류 위원장은 “교섭에서 여러 차례 업무량 감소를 주장했으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다가 이번 대법원판결을 계기로 소송에 들어갔다”고 했다.

임금피크제 제도 자체가 위법이라는 판례는 아직 없어 노동자들은 개별 사업장의 상황마다 법원 판단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KB국민은행노조도 “이번 소송은 임금피크제 자체가 무효라는 판결을 구하는 소송이 아니다”라며 “노조는 교섭과 투쟁으로 임금피크제가 폐지되는 그날까지 앞장서 싸우겠지만, 우선 KB국민은행의 임금피크제가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적법하게 운영되길 바란다”고 했다.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열린 ‘임금피크제 대법원판결의 쟁점과 이해’ 설명회에서 한 참석자가 관련 자료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대법원판결 이후인 지난 6월 ‘임금피크제 대법원판결 관련 대응방향’을 회원사에 배포했다. 경총은 이 자료에서 “대법원 판결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중에서도 예외적이고 특수한 사례에 해당한다”며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원칙적으로 법상 연령차별에 해당하지 않고,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라도 기존 규정상의 정년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됐다면 이번 판결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임금피크제는 정년연장이나 고용보장을 위해 노사 간 합의로 도입된 제도인 만큼 노사가 함께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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