훠궈·마라탕 같은 '매운맛' 중국은 불과 30여년..중국 식문화의 '보수성과 개방성'[김유익의 광저우 책갈피]

김유익 재중문화교류활동가 2022. 8. 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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훠궈

<중국의 고추 식문화 역사(中國食辣史)>

차오위(曹雨)

<중국의 고추 식문화 역사>라는 ‘대륙책’의 대만 출간이 최근 작은 소동을 불러일으켰다. 출판사가 에디터의 ‘모두 바꾸기’ 기능을 이용해 ‘대륙’이란 표현을 ‘중국’이라 치환하고 인쇄했는데,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중국”이라는 문장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화권에서 대륙이란 표현이 곧 중국을 의미하는 관행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어떤 기호의 의미와 물자의 용도 치환은 중국인들이 처음 고추를 받아들였던 명나라 시절에도 벌어졌던 일이다. 17세기 항저우의 부유한 상인들은 빨간색 고추를 자신의 정원에서 이국풍 관상식물로 키웠다. 고추를 향신료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후 창장(長江·양쯔강)을 거슬러 올라간 대륙의 반대편 서쪽 산간지역 구이저우(貴州)의 묘족 같은 가난한 소수민족들이었다. 이 지역은 내륙에서 생산되는 소금이 없고, 교통이 불편하며, 국가의 전매정책 때문에 값비싼 이 필수 양념을 많이 사용할 수 없어서, 대체재로 선택한 것이 바로 고추였다.

고추는 오랜 기간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었다. 대항해시대에 고추와 함께 아메리카에서 중국으로 전해진 구황작물 감자, 고구마, 옥수수 덕에 중국도 인구가 격증했다.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농사에 적절한 땅은 모두 쌀과 같은 주곡 생산에 사용됐다. 농사기술이 발전했지만, 먹는 입이 더 빨리 늘어 체제 불안정 요소가 됐다. 하지만 산업혁명 같은 혁신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국에서 최근에 크게 유행한, 탈출구 없는 경쟁을 의미하는 내권(內卷)이란 말은 원래 이런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어쨌든 “찬은 별로 없는데 밥을 많이 넘기기(下飯)” 위해 곁들인 채소류 반찬은 짠맛, 신맛 그리고 매운맛이 필요했다. 조선의 김치도 아마 그렇게 생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익숙한 훠궈나 마라탕으로 대변되는 ‘매운맛 중국’은 지난 30년 개혁·개방의 유산이며 도시화·공업화와 함께 ‘만들어진 전통’이다. 가난한 농촌 지역의 농민과 청년들이 연안 지역의 대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이동했는데, 노동의 허기를 채울 간단한 한 끼의 매식이나, 어쩌다 함께 어울리며 향수를 달랠 회식 자리 메뉴가 필요했다. 이때 신선하지 않은 저렴한 재료의 맛을 가리기 위해서는 매운맛 음식이 제격이었다.

만들어진 전통은 매운 음식만이 아니다. 중국의 8대 요리와 같은 소위 ‘강호의 문파 음식(江湖菜)’은 혁명을 거치면서 해체된 음식의 계급성이 지난 100여년간 새롭게 구성된 체계이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만일 혁명 없는 산업화가 이뤄졌다면, 새로운 식문화의 소비 주체가 된 도시 중산층이 모방했을 음식은 전혀 맵지 않은 전통의 관청과 궁중음식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영국 중상류층 식문화가 혼입된 홍콩식 문화가 이를 방증하고, 서구의 달달한 간식과 달리 매운맛이 석권하는 중국의 간식 문화에도 같은 이유를 댈 수 있다.

고추가 중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 400년이나 걸렸다. 지금은 절반 가까운 중국인이 즐기는 다양한 매운 음식과 과거와 달리 매운맛을 긍정으로 상징하는 문화 기호가 출현하는 현실을 보며, ‘80허우’(1980년대 출생)인 저자는 중국 문화의 보수성과 개방성이라는 모순적 이원성을 지적한다. 중화문명이 단절 없이 안정되게 발전해온 원동력을 여기에서 찾는다. 그러니 인권이나 민주주의 같은 인류의 보편가치들이 대륙에서 나름 꽃피는 것을 볼 때까지는 인내심이 더 필요하다.

김유익 재중문화교류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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