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우의 시론>'대우조선 적폐' 전모 규명할 때다

기자 2022. 8. 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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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 논설고문

1997년 기아車 내부 모순 최악

결국 파산해서 현대차에 매각

올 2분기 사상 최대 실적 기록

대우조선 ‘민폐 기업’ 길 선택

낙하산 경영과 불법 파업 반복

정부가 쏟아부은 혈세만 12兆

대우조선해양이 끝 모를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다. 어찌 그리 1997년 외환위기 직전 ‘기아차 사태’와 똑 닮았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하지만 두 기업은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그 갈림길은 무엇이었을까. ‘국민기업’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국가 경제를 협박하던 기아차는 당시 우리 사회가 감추고 있던 내부 모순을 가장 집약적으로 노출하던 사태요, 사건이었다. 1997년 한여름 한보 부도 사태에 질린 금융계는 다음 차례로 기아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미 6월 말부터 부도 조짐이 청와대에 보고되기 시작했다. 7월에는 “밑 빠진 독”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다녔다. 한국 경제 전체가 기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다른 한편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6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기아살리기 범국민운동연합’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기아 편들기에 나섰다. 기아는 다른 재벌들과 달리 ‘국민기업’이라는 이유였다. 정부를 압박하는 집회와 시위가 이어지면서 기아 주식 사주기 운동까지 벌어졌다.

하긴 다른 오너 경영체와 달리 기아는 소유-경영의 분리, 전문경영인 체제, 종업원 지주제도 등의 외양을 갖추고 있으니 선진적 기업 형태라 할 만했다. 하지만 그 속은 썩을 대로 썩고 있었다. 무분별 차입에 의한 계열기업 확장에 더해, 기아는 다른 재벌보다 더 골치 아픈 요인까지 겹쳐 있었다. 강성 노조였다. 대주주가 없다 보니 우리사주 조합과 경영발전위원회가 사실상 회사의 주인이 되면서 노사 간의 견제장치가 사라졌다. 전문경영인 김선홍 회장으로서는 노조의 지지가 경영권을 지탱하는 중요한 권력 기반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여론은 기아 편이었다.

당시 어느 진보·좌파 경제학자는 “기아를 국영 또는 공영기업의 형태에서 국민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보다 민주적 대안이 아닐까 한다”며 “소유관계의 사회화, 경영통제의 민주화 등 사회화의 형태 속에서 독점적 대기업의 문제를 해결”(‘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하자고 호소했다. 불행히도 기아차는 그의 주장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시장에서의 파산 과정을 거쳐 다른 기업에 흡수돼버린 것이다. 그럼 그 기아차는 어떻게 됐을까. 멀리 갈 것도 없다. 2022년 기아는 2분기 경영실적을 발표하면서 매출액 21조8760억 원, 영업이익 2조2341억 원 등,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다행히도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라는 책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것은 대우조선해양이었다. 지금 대우조선의 최대 주주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지분 55.7%)이니 국영은 아니더라도 공영기업인 셈이다. 경영 통제도 민주화(?)돼 있다. 경영진은 낙하산이 전통이고, 사외이사진도 거의 절반이 정치권에서 임시 출장 나온 사람들이다. 더 이상 어떤 해법을 바라겠는가.

지금 대우조선은 기업이 아니다. 그냥 부실 덩어리다. 이 회사는 분식회계를 하지 않는 순간마다 실체를 드러낸다. 정부가 혈세를 12조 원이나 퍼부었음에도 재무구조는 악화일로다. 지난해 1조7546억 원의 영업 손실을 낸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4701억 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가 쌓이면서 3월 말 현재 부채 비율이 523.16%다. 지난해 말 이후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144.12%포인트 치솟았다. 툭하면 불법 점거 파업이고, 정치투쟁이나 벌이는 강성 노조, 5조 원대의 분식회계, 직원 한 명이 8년에 걸쳐 저지른 180억 원 횡령, 그런 와중에 수천억 원대의 직원 성과급 잔치…. 노동자의 고통을 키우지 말고 대우조선을 살려내라고 외치는 정치인들이 존재하는 한 이 회사의 경영 정상화는 연목구어다.

세금으로 연명하는 대우조선은 국제시장에 나가 적자 수주를 주도하고 이것이 국내 조선업들의 출혈경쟁을 유발, 산업의 부실을 자초했다. 2억5000만∼2억6000만 달러에 달하던 LNG 선박 발주를 1억9000만 달러까지 떨어뜨린 주인공이 누구인가. 언제까지 이런 회사를 위해 국민이 대신 희생해야 하나. 로빈 후드 가면을 쓴 채 감언이설 선동하던 정치인들이나, 이들을 등에 업고 낙하산으로 내려온 경영자·사외이사들, 그들과 결탁해 꿀 빨던 노조의 과거 행적을 파헤쳐 국민 앞에 전시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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