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으로 간 조선의 달항아리 네 기구한 사연을 말해다오

기자 2022. 8. 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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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박물관에 전시된 달항아리. 조선백자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견인하고 있다. 혜화1117 제공

■ 백 년 전 영국, 조선을 만나다 홍지혜 지음│혜화 1117

일제의 조선백자 관심이 서방세계에도 영향 끼쳐

100년전 英수집가에게 건네져 우여곡절 끝 박물관으로

우연·운명 얽힌 파란만장 항아리의 행로 추적 흥미로워

박물관에서 선조들의 손때와 지혜가 묻어 있는 생활소품을 감상하다 보면 문득 생각하게 된다. 그 옛날 최초로 이걸 사용하던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경로로 손에 넣었을까? 누군가에게 물려주거나 선물하기도 했을까? 간혹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의 유물을 대할 때면 이러한 의문은 더욱 커진다. 몇백 년 전의 물건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지금 눈앞에 있다는 신비함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같은 결이지만 다른 방향으로 비슷하게 생각한 사람이 있다. ‘백 년 전 영국, 조선을 만나다’의 저자 홍지혜다. 영국에서 현대미술사를 공부하던 저자는 우연히 런던에서 달항아리 한 점을 마주하고 조선의 백자가 영국까지 오게 된 경위에 궁금증을 품는다. 달항아리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백자 양식으로, 이름과 같이 둥글고 커다란 형태의 항아리를 뜻한다.

지금이야 K-팝을 비롯해 한국의 다양한 문물이 세계에 널리 알려진 상황이지만 달항아리가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조선은 그 존재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변방의 한 국가에 불과했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존재나 문화와는 어디까지나 별개의 차원이었다. 그렇다면 그처럼 멀고 먼 조선 땅에서 생산된 백자가 영국에서 위상을 얻기까지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조선이 영국을 비롯한 서방에 알려지게 된 직접적 계기는 일본이다.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위세를 떨치던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삼으면서 자연스레 조선도 ‘세계’의 눈에 띄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만 하더라도 조선의 문화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것이었다.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의 대상이었던 일본과 달리 당시 서구의 시선 속 조선의 모습은 “근대화나 서구화를 향한 의지는 물론이고 이를 받아들일 능력조차 없어 보이는” 피식민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랬던 조선의 문화 예술에 대한 시선은 일본의 식민 지배가 본격화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오래전부터 유행하던 고려청자에 대한 수요를 충족할 수 없게 되자 일본의 수집가나 부유층은 그 대안으로 조선백자에 눈을 돌렸고, 이는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서방 국가들의 시선까지 조선백자에 주목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조선의 문화 예술품에 대한 일본의 착취가 조선백자의 위상을 높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더불어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와 같이 조선 미술에 각별한 애정을 지닌 이들이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하는 한편, 일본을 필두로 아시아 예술 전반에 관심이 깊었던 영국의 스튜디오 포터리가 조선의 도자기를 재평가하면서 어느 시점부터 독자적인 장르로 자리하게 된다.

저자가 런던에서 마주했다는 달항아리 역시 야나기와 스튜디오 포터리의 영향이 미친 결과물이다. 해당 달항아리의 최초 소유자는 버나드 리치라는 인물로, 스튜디오 포터리의 일원이었던 리치는 야나기와 동행한 한국 여행에서 본격적으로 한국 미술에 심취하고, 반닫이 등 조선의 전통 가구와 함께 달항아리를 사들여 영국으로 가지고 간다. 리치와 함께 영국으로 건너간 달항아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로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다. 리치는 소중히 간직하던 달항아리를 동료 도예가인 루시 리에게 선물하고, 훗날 리가 그것을 다시 리치의 세 번째 부인에게 선물한다. 그러다 세 번째 부인 사후에 상속세를 감당할 수 없었던 부인의 가족들이 달항아리를 시장에 내놓았고, 그렇게 나온 달항아리를 영국박물관이 구입해 한국관에 전시하면서 지금처럼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백 년 전 영국, 조선을 만나다’는 이처럼 조선 땅에서 만들어진 달항아리 한 점이 영국에 도달하기까지의 사연을 시공간을 넘나들며 유려하게 풀어낸다. 얼핏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궁금증에서 출발한 질문이 해답을 찾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잔가지를 뻗어 나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물과 사건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광경, 우연과 운명이 기묘하게 작용해 한데 수렴하는 모습이 마치 범인의 흔적을 쫓는 탐정을 지켜보는 것처럼 흥미롭고 매혹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매혹의 끝에 묵직한 감동이 남는다. 복잡한 정치적 지형 속에서 여러 고난과 역경을 딛고 살아남은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 거기서 만들어진 달항아리 한 점을 통해 삶과 예술, 궁극적으로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347쪽, 2만2000원.

한승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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