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뜨 '162억 과태료' 면제받고도..'사회적합의' 응답 없는 SPC

박태우 2022. 8. 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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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대통령실 오체투지 행렬
"SPC 노동탄압 이해할 수 없어"
정의당·민주당 나선 중재에서도
SPC "이행 검증자료 제출 못해"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회원들이 4일 오전 서울역 인근에서 에스피씨(SPC)파리바게뜨 사태 해결과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4일 오전 11시. 서울역 광장에 흰 한복을 입은 30여명이 모여들었다. 북소리에 맞춰 불볕더위로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서 절을 하며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2㎞ 남짓 행진했다. 행렬 제일 앞쪽에는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대표 권영국 변호사와 53일 동안 단식투쟁을 했던 임종린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이 섰다. 이들은 온 몸을 던져 절을 하는 ‘오체투지’를 통해 ‘파리바게뜨 사회적 합의 이행’과 ‘노조탄압 중단’을 요구했다.

이날 오체투지에는 노조 조합원이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만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강원 강릉에서 초등교사로 일하는 남정아(49)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이날 행렬에 함께 했다. 남씨는 “임 지회장이 단식 투쟁을 할 때, 파리바게뜨 문제에 대해 처음 알게된 뒤 평범한 사람들도 관심을 갖고 있고, 이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는 생각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설관리업종의 회사를 그만두고 배달라이더로 일하고 있는 조건희(22)씨도 에스엔에스를 통해 소식을 듣고 오체투지를 자원했다. 조씨는 “알바를 하든 건설현장에서 일하든 늘 열악하고 위험한 곳에서 일을 해왔다”며 “이곳(파리바게뜨)의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노동자들의 여건도 나아질 것이라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예술강사로 일하는 김기영(49)씨는 오체투지는 함께 하지 못했지만, 잠시 짬을 내 피켓을 들고 행진하며 힘을 보탰다. 김씨는 “아이가 파리바게뜨를 좋아하지만, 파리바게뜨 대신 다른 빵집을 다니고 있다”며 “노조는 법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도 노조 탄압 자체가 굉장히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회원들이 4일 오전 서울역 인근에서 에스피씨(SPC)파리바게뜨 사태 해결과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시민들의 이러한 바람에도 파리바게뜨 ‘사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임 지회장의 단식에 뒤이어 시작된 파리바게뜨지회 간부들의 집단단식이 시작된지도 벌써 한달이 넘었다. 사태가 장기회돠면서, 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말 3일 연속으로 중재에 나섰지만, 양쪽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진 의원은 지난 3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회사와 노조 사이의 불신이 워낙 커서 쉽게 풀리지 못하고 있다”며 “회사 쪽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핵심 쟁점은 파리바게뜨 가맹점 제빵기사 불법파견을 해결하기 위해 체결된 ‘사회적 합의’를 회사가 이행했는지 여부다. 2017년 <한겨레> 보도로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의혹이 처음 불거진 뒤,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이를 통해 파리크라상에 ‘협력업체 소속으로 파리바게뜨 가맹점에서 본사(파리크라상)의 지시를 받으며 일했던 제빵·카페기사 5300여명을 직접고용하라’고 시정지시했다. 파리바게뜨는 시정지시를 이행하지 않아 162억원의 과태료 부과 처분까지 받았다. 대신 가맹점주협의회와 함께 자회사(현 피비파트너즈)를 설립해 제빵기사들을 고용하기로 했다. 2018년 1월 파리크라상과 정의당, 민주당, 가맹점주협의회, 시민사회단체, 파리바게뜨지회, 또다른 협력업체 노조였던 한국노총 노조까지 7자가 자회사 고용 등의 내용에 합의한 것이 이른바 ‘사회적 합의’다. 이를 통해 파리크라상은 과태료 처분을 면제 받았다.

회사는 합의가 있은지 3년째가 되는 지난해 1월 파리바게뜨지회를 빼놓고 ‘사회적 합의 이행’ 선포식까지 열었지만, 지회는 합의가 이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합의내용에는 자회사 고용 제빵기사의 급여를 “3년 이내에 파리크라상과 동일한 수준으로 적용한다”고 돼있지만, 회사가 이를 뒷받침할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있어서다. 노조는 파리크라상과 피비파트너즈의 급여 체계에 관한 자료를 요구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았고, 사회적합의의 또다른 주체인 정의당·민주당의 자료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국회의 중재과정에서 회사 쪽은 이행여부 검증 자체를 사회적 합의에 참여한 7자가 다시 모여 검증 기준·방법을 협의하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임영국 화섬노조 사무처장은 “제빵기사들이 직접고용을 포기한 것은 본사(파리크라상)와 임금 수준을 맞춘다는 합의에 대한 믿음이었다”며 “회사가 합의를 이행했다고 주장하며 근거도 밝히지 않는 것은 합의가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파리바게뜨지회의 요구 가운데는 회사가 지회 조합원을 탈퇴시킨 뒤 한국노총 노조에 가입하도록 하고, 지회 조합원을 승진에서 차별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도 있다. 이미 노동부가 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노동부는 피비파트너즈 전무 등 회사 고위직 2명의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파악해 입건한 뒤 수사를 윗선으로 확대하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 2월 제빵기사를 관리하는 사업부장·제조장 등 9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는데, 검찰의 보강수사 지휘에 따라 지난 4월에서야 압수수색을 한 뒤 이를 바탕으로 회사 윗선의 개입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파리바게뜨 문제는 윤석열 정부 첫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기도 한 진성준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룰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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