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포토문명시대, 사진은 약인가 독인가

2022. 8. 5.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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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진 찍는 게 일상이 됐다.

스마트폰 사진의 편리한 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당사자들에게는 사진이 독인 셈이다.

스마트폰이 가져온 포토문명시대, 사진 찍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사진 매너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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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사진 장점 많지만
단체카톡방에 마구 올리면
선물이 아닌 테러이자 만행
찍는 기술보다 매너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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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진 찍는 게 일상이 됐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아무 때나 손쉽게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 지긋한 세대는 수학여행 가서 찍은 추억의 사진이 있을 것이다. 그때는 제법 큰 카메라와 필름을 갖고 다녀야 했고 현상소를 거쳐야 사진이 나왔다.

스마트폰 사진의 편리한 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강의를 들을 때 메모하는 대신 칠판을 사진으로 찍으면 된다. 매일 일기를 쓰는 대신 사진 몇장을 남겨놓으면 포토일기가 된다. 친구를 만나서도 사진 찍고, 식당에서 음식이 나와도 먹기 전에 사진부터 찍는다. 유명인사를 만나면 예전에는 사인을 받았지만 요즘은 인증샷을 찍는다.

스마트폰 시대에 가장 많이 찍는 사진은 자기가 자기를 찍는 ‘셀카’다. 셀카를 연대별로 모으면 그 사람의 일대기가 된다.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할 때 기꺼이 응하는 사람도 있고 거절하거나 피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태도는 ‘마음의 거리’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스마트폰 사진 가운데 함께 찍은 사진이 가장 많은 사람이 나와 제일 가까운 사이일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기록이고 증거고 정보고 역사다. 또한 소통이고 공감이며 예술이다. 우리는 매일 찍으며 살고 찍히며 사는 포토문명시대에 살고 있다.

사진은 약일까 독일까.

요즘 대통령과 여당 대표 직무대행이 주고받은 텔레그램 문자가 기자들에게 사진 찍혀 난리가 났다. 국회 출입기자 카메라에 사진이 찍혔으니 ‘잘못 보신 모양’이라고 둘러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여당 대표 직무대행이 사과했으나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져 여당 지휘부가 사퇴하고 대통령실이 전전긍긍하는 파동이 벌어지고 말았다. 당사자들에게는 사진이 독인 셈이다. 이런 경우는 너무나 많다. 사진의 정보 가치는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된다.

맥아더 장군은 2차 세계대전 중 필리핀 상륙작전을 할 때 종군기자가 찍은 사진이 마음에 안 들자 부하들을 데리고 상륙 장면을 재현했다. 비판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대꾸했다.

“위대한 상륙작전에 참가한 미군이 후세에 당당한 모습으로 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진 찍기에 매달리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세계 유명 관광지에는 사진 찍을 때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거나 아예 촬영을 금지하는 장소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고를 무시하고 절벽이나 폭포 같은 데서 사진을 찍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매력적인 인증사진 몇장 얻으려고 목숨까지 거는 세상이 됐다.

나는 이런저런 모임에 가면 주의 깊게 사진을 찍는다. 행사가 끝나면 사진을 한장 한장 살펴보고 잘 나온 사진만 추려서 보낸다. 되도록 단체 카톡방에 올리지 않고 개인에게 따로 보낸다. 프라이버시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선후배들과 회식을 했다. 오랜만에 만나 기분 좋게 환담하며 술도 많이 마셨다. 핵폭탄은 집에 도착도 하기 전에 터졌다. 참석자 한명이 사진 수십장을 백명이 넘는 회원이 있는 단체 카톡방에 마구잡이로 올린 것이다. 몇몇 사진은 전위예술 작품에 가까웠다.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게진 사람, 술병에 숟가락을 꽂고 노래하는 사람, 한쪽 눈을 찡그린 사람, 혓바닥을 내민 사람 등등 참으로 가관이었다. 이건 사진 선물이 아니라 명백한 사진 테러다. 포토문맹이 저지른 만행이다.

스마트폰이 가져온 포토문명시대, 사진 찍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사진 매너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장의 사진은 약도 되고 독도 된다.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까지 효력을 지닌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사진을 남긴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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