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구약은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도덕 명령"

고명섭 2022. 8. 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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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자 크리스틴 헤이스
인류 문화의 보고 '구약' 강의

부패한 권력자들에 맞선
참된 선지자들의 이야기

구약 읽기

역사와 문헌

크리스틴 헤이스 지음, 김성웅 옮김 l 문학동네 l 2만9000원

인도의 베다, 중국의 사서오경, 그리스의 서사시가 위대한 인류 문화유산이듯,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창출한 <구약 성서>도 인류 문화의 보고에 속한다. 카를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 인류의 지적 투쟁이 응결된 정신의 총화가 이 고대의 문헌들이다. 더구나 <구약 성서>는 서구 3대 종교인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공통 토대이기도 하다. 종교학자 크리스틴 헤이스 미국 예일대 교수가 쓴 <구약 읽기>는 유대 민족 역사서이자 서양 종교의 원형인 이 방대한 문헌의 체계적인 안내서다.

지은이는 먼저 <구약 성서>가 단일한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구약 성서>는 아주 성격이 다른 책 24권이 묶인 일종의 선집이다. 이 텍스트에는 세상 창조 이야기가 있고 이스라엘 역사 기록이 있으며, 선지자들의 예언과 투쟁이 있고 시와 잠언과 지혜의 말씀이 있다. <구약 성서>는 상이한 역사적 상황에서 상이한 관심을 품은 여러 저자와 편집자가 참여해 만든 공동 작품이다. 기원전 10세기부터 1000여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 이 책이다. 특히 그 핵심을 이루는 텍스트들은 기원전 6세기를 전후한 정치적 격변기에 창출됐다.

고대 유대 문헌 연구의 권위자 크리스틴 헤이스 미국 예일대 교수. 위키미디어 코먼스

<구약 성서>의 성립 경위를 알려면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먼저 알아둘 필요가 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기원전 1200년 무렵 가나안 지방에 정착해 12지파 족장 시대를 거쳐 기원전 1000년쯤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그러다 기원전 922년 북의 10지파와 남의 2지파가 분열해 각각 북부 이스라엘 왕국과 남부 유다 왕국으로 쪼개졌다. 기원전 722년 북왕국이 아시리아에 정복당하고, 남왕국도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에 패배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고대 역사에서 한 민족의 정복과 유배는 대개 그 민족의 소멸을 뜻했다. 정복당한 민족은 자기들의 신을 버리고 정복자의 신을 받아들였다. 북왕국 이스라엘인들이 바로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남왕국의 유대인들은 정복당한 뒤에도 자신들의 신을 버리지 않았고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냈다. 지은이는 이 유대인들이 그 시대의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어떤 급진적이고 새로운 사상과 전승”을 지녔기에 시련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말하는 ‘급진적이고 새로운 사상’이 바로 유일신 사상이다.

여기서 지은이는 종교의 발전 경로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을 제시한다. 먼저 종교 진화론이다. 종교는 자연의 힘을 신격화한 다신교에서 출발해 여러 신들 가운데 최고신을 섬기는 단일신교를 거쳐 하나의 신만을 믿고 따르는 유일신교로 진화한다는 것이 종교 진화론이다. 이런 전통적인 해석에 맞서 등장한 것이 종교 혁명론이다. 유일신교는 단순히 신들의 수가 줄어들어 하나가 된 결과가 아니라, 어떤 근본적인 변혁 속에 탄생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성서학자 예헤즈켈 카우프만(1889~1963)이 주창한 이 혁명론은 다신교 신과 일신교 신의 본질적 차이를 강조한다. 핵심은 이것이다. 다신교에서 신들은 어떤 원계(원형적인 세계) 안에서 그 원계의 힘을 받아 탄생하는 데 반해, 유일신교의 신은 처음부터 스스로 존재한다. 또 다신교의 원계에서는 선한 신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신도 태어난다. 그리하여 선과 악이 끝없이 싸우는 ‘우주 전쟁’이 벌어진다. 그러나 유일신교에서는 신이 모든 것에 앞서 스스로 존재하고 그 신에게서 모든 것이 창출되므로 악한 신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유일신교에서 악은 창조 후에야 출현한다. 신이 만든 인간이 신에게서 받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해 죄를 범함으로써 악이 퍼지는 것이다.

카우프만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유일신교는 당시 근동 지방의 다신교와 벌인 투쟁의 소산이라고 보았다. 지은이는 카우프만의 이런 설명 구도를 대체로 받아들이면서도, 이런 혁명적 투쟁이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이루어졌음을 강조한다. <구약 성서>는 아브라함 시대부터 유일신 신앙이 확립돼 있었던 것처럼 서술하지만 역사적 실상은 다르다. 후대의 소수 지식인들이 다신교를 믿던 이스라엘 내부 사람들을 향해 유일신 신앙을 요구했고, 치열한 ‘사상적 내전’을 거쳐 유일신교가 이스라엘의 종교로 확립됐음을 <구약 성서>의 여러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약 성서>에는 고대 근동의 다신교 신앙이 변형된 채로 삽입돼 있을 뿐 아니라, 그 다신교 신앙에 대한 이스라엘인들의 내전과 혁명의 기나긴 투쟁이 담겨 있다. <구약 성서>는 성격이 다른 수많은 자료로 구성돼 있다. 천지창조부터가 두 가지 판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도 두 가지 판본이 섞여 있다. 지은이는 이 사태를 ‘반복과 상충’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전승돼 오던 여러 텍스트를 가져와 편집하다보니 유사한 내용이 반복되거나 상충하는 내용이 나란히 놓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렇게 성립한 <구약 성서>가 전하는 메시지다. 지은이는 신이 역사를 통해 인간들에게 도덕적 명령을 내린다는 것이야말로 <구약 성서>의 핵심을 이룬다고 말한다. 그런 이유로 신의 도덕 명령을 대행하는 선지자들의 이야기가 중심에 놓인다. 그러나 선지자라고 해서 모두 신의 뜻을 대행하는 자들인 건 아니다. <구약 성서>는 유다-이스라엘의 왕들이 예언자들을 고용해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써먹었음을 알려준다. 후대의 성서 편집자들은 궁정 예언자들의 거짓에 맞서 신의 뜻을 바르게 전하는 참된 선지자들을 부각했다. 그런 선지자를 대표하는 사람이 기원전 8세기 유다 왕국의 선지자 이사야다. 이사야는 말한다.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집을 연달아 차지하고 땅을 차례로 사들이는 자들아! 빈터 하나 남기지 않고 온 세상을 혼자 살 듯이 차지하는 자들아! (…) 새벽부터 독한 술을 찾아 나서고 밤늦게까지 술독에 빠져 있는 자들아! (…)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뇌물에 눈이 어두워 죄인을 옳다 하고 옳은 사람을 죄 있다 하는 자들아!” 이사야는 지배자들의 범죄와 불의를 끝없이 질타했다. 이렇게 인간의 도덕적 타락이라는 문제를 신앙의 본질과 연결한 것이야말로 <구약 성서>가 인류의 고전으로 남은 이유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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