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내'가 없는 글은 얼마나 무용한가

최윤아 2022. 8. 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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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참 이상하게 영화를 본다' 이 책은 이런 반응에 대한 나의 이야기다."

"글을 읽었는데 글쓴이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글, 즉 제목 아래 어떤 이름을 붙여도 무관한 글은 생산자 표시가 없는 상품이다. 사기요, 불량품이다." 저자는 이 책을 "영화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나의 글쓰기 레시피 공개서"라고 스스로 정의하는데, 이 레시피의 '한 끗'은 언제나 나라는 인간의 개별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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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정희진 지음 l 교양인 l 1만6000원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정희진 지음 l 교양인 l 1만6000원

“‘넌 참 이상하게 영화를 본다’… 이 책은 이런 반응에 대한 나의 이야기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생판 다른 대사에 꽂힌다. 최고로 꼽는 장면도 제각각, 영화의 메시지를 정반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새 책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를 읽고 나면, 타인과 포개어지지 않는 오직 나만의 ‘이상한’ 감상이 오독이나 오해가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럽고 타당하기까지 한 반응이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여성학자 정희진. <한겨레> 자료사진

정희진은 이 책에서 ‘객관’보다 더 정의로운 ‘주관’을, ‘보편’보다 더 품이 넓은 ‘개별’을, ‘전체’보다 더 정확한 ‘부분’을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나는 언제나 나만의 부분적 시각이 독창적 글쓰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 부분적 관점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배적인 객관성 개념에 나의 목소리를 보내고 조율하고 틈새를 내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실천이다.”

‘부분적’이라는 것은 곧 ‘나’로부터 길어올렸다는 의미다. 나의 위치, 나의 시각, 나의 경험에서 뻗어나가지 않은 글의 무용함을 그는 매섭게 질타한다. “글을 읽었는데 글쓴이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글, 즉 제목 아래 어떤 이름을 붙여도 무관한 글은 생산자 표시가 없는 상품이다. 사기요, 불량품이다.” 저자는 이 책을 “영화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나의 글쓰기 레시피 공개서”라고 스스로 정의하는데, 이 레시피의 ‘한 끗’은 언제나 나라는 인간의 개별성에 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티브이엔 제공

책에는 저자가 자신을 주재료로, 영화를 부재료로 만들어낸 독특한 맛의 영화 평론 18편이 담겼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대한 글도 있다. “나에게 이 작품의 주제는 ‘나이듦’이었다. (…) 나이는 다른 사회구조와 다르게 ‘어려도, 어중간해도, 늙어도’ 맥락에 따라 차별받는다. 그래서 모두가 피해자라고 싸운다.”

영화 <암수살인>을 다룬 글에서는 ‘완전 범죄’를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관점에서 재정의한다. “‘완전 범죄’는 머리 좋은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피해를 파악할 수 없는 범죄가 완전 범죄다. (…) 암수살인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이주자, 난민, 노약자, 빈곤층, 여성 등 취약계층이 대부분이었다.” 중년 여성학자의 몸을 통과한 영화는 이렇게 다른 맛을 낸다.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도 함께 출간되어, 총 5권인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가 완간됐다. <영화가…>가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답이라면, <새로운…>은 ‘어떻게 공부(사고)하는가’에 대한 답처럼 느껴진다. 정희진은 이 책에서 아는 것은 힘이 아니라 덫이라고 경고하면서, 아는 것에서 “탈출”케 하는 인식론적 방법론인 ‘융합’에 대해 설파한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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