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수의 사람을 생각하는 정책] 취약계층 저버린 재정당국의 꼼수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 2022. 8. 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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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는 경제정책을 총괄 조정한다. 세제실은 조세를 통해 재정을 마련하고 예산실은 예산을 편성하여 재정을 집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지난 7월 말, 2023년 조세와 복지 정책에서 국민 모두에게 적용될 두 가지 중요한 기준이 발표됐다. 하나는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으로, 세전 소득에서 비과세와 소득공제·세액공제 항목을 제외한 과세표준 금액의 구간마다 누진적 세율을 적용하여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이다. 또 다른 하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결정한 ‘기준중위소득’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시행하는 대부분의 복지제도에서 가구원수별 기준중위소득의 일정비율로 선정기준 설정에 활용된다. 그런데 기획재정부는 두 가지 기준과 관련하여 이중적 태도와 꼼수로 저소득층을 외면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세제개편안을 통해 대기업과 부자의 세금을 크게 줄여주려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재정상황을 핑계로 저소득층 지원제도의 선정기준과 급여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을 원칙에 따라 합의된 수준보다 최대한 낮출 것을 주장한다.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

먼저 이번 세제개편안은 발표 당시부터 사상 최대 규모의 대기업과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여야가 충돌하는 등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는 말할 것도 없고 소득세의 과세표준 구간 조정으로 인한 감세 혜택이 소득계층별로 누구에게 더 많이 돌아갈지를 두고 해묵은 논쟁을 반복 중이다. 세율이 가장 낮은 두 개 구간을 중심으로 과세표준을 상향 조정했지만, 정부안에 따르면 연봉이 7800만~1억2000만원인 고소득층의 소득세가 54만원 줄어 가처분 소득이 증가하는 반면, 최저임금을 약간 넘는 연봉 2700만~3000만원인 노동자의 경우 겨우 8만원만 감소한다. 이에 대해 경제부총리는 세금이 줄어드는 금액으로는 고소득층이 크지만 저소득층은 이미 소득세를 적게 내기 때문에 세금이 줄어드는 금액은 작지만 비율은 더 크다고 해명한다.

세제개편안·복지선 저소득층 외면

하지만 가장 큰 혜택을 받는 고소득층 비율은 약 10%에 불과한 반면, 비과세 식대 범위 10만원 확대의 혜택조차도 전혀 받지 못하는 약 37%의 면세점 이하 근로자를 생각하면 설득력 없는 꼼수 해명에 불과하다. 매년 감소하는 세수가 수조원에 이르고 재정 지출에도 영향을 미치는 세제개편안에서 세금을 적게 내거나 전혀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소득층은 외면해도 괜찮은가.

두 차례 장관 후보자 낙마로 보건복지부 장관 대신 기획재정부 출신 1차관이 주재한 중앙생활보장위원회 회의에서는 결국 2023년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하지 못했다. 이번에 진행된 분과위원회 논의에서도 기재부는 2020년 합의된 원칙에 의해 산출된 5.47%가 아니라 경제의 불확실성과 재정악화 등을 이유로 4.19%를 제시했다. 또한 25일 개최된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는 2023년 최저임금 인상률 5%보다 낮아야 한다는 새 논리를 제시했다.

기재부는 다양한 근거로 예외적 상황을 주장하며 그동안 기준중위소득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코로나19 상황인 2020년에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전망된다며 원칙이 마련된 첫해부터 인상률을 조정해야 한다는 기재부의 주장이 반영됐다. 2021년엔 당시 1%대였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을 기본증가율에 반영할 것을 주장하여 또다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올해는 치솟는 물가상승률을 추가 반영해서 상향 조정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기재부는 작년과 정반대로 물가상승률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경제여건과 재정상황을 강조하며 전년 증가율보다 낮은 4.19%를 주장했다. 그동안의 과정을 보면, 결국 원칙에 따른 인상률(5.47%)을 적용할 경우 2023년에 추가될 약 6000억원을 줄이는 것이 재정당국의 속셈이었던 것이다.

기준 중위소득 현실화가 급선무

지난달 29일 다시 개최된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당초 합의된 원칙대로 산출된 인상률(5.47%)이 최종 결정되어 2023년 기준중위소득이 약 540만원(4인 가구)으로 높아지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만 저소득층의 삶을 외면하고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애쓰던 기재부의 속셈을 숨기고 2015년 개편 이후 가장 높은 인상률로 약 6000억원의 재정 부담이 추가되지만 고물가 등 경제상황을 고려해 원칙을 지킨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재정당국의 해명을 들으니 마음이 불편하다. 게다가 기재부의 억지 주장으로 합의된 원칙조차 지키지 못하고 전체 가구 소득증가율에 미치지 못한 2~3%의 낮은 인상률로 인해 OECD 상대빈곤 기준에 따른 통계청 중위소득과의 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생계급여 등 저소득층 지원수준이 충분하지 못하다. 특히 저소득층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1인 가구의 기준중위소득이 2023년에는 최저임금과 비슷한 수준인 약 207만원으로 인상되지만 통계청 중위소득 기준으로는 2020년에 이미 250만원을 넘어 큰 격차가 존재한다. 게다가 경제부총리가 ‘역대급’ 감세를 위한 세제개편안을 직접 해명하는 상황을 교차시켜 보니 저소득층을 외면한 재정당국의 이중적 태도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2023년은 3년 주기의 제3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이 수립되는 시점이다. 매년 합의된 인상률 준수를 넘어, 통계청 중위소득과의 격차를 줄여 OECD 상대빈곤 기준과 동일하게 만들기 위해 새로운 개편안을 마련하고 재산의 소득환산율(월 1.04%)을 임대차법상 월세전환율(연 2.5%) 수준으로 낮출 것을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특히 처음 지켜진 인상률을 역대 최고 수준이라 포장하는 재정당국에 의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번 추경에 이어 또다시 의문의 1패를 당했다. 민주당은 저소득층이 국민의힘을 지지한다고 탓하기보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내세우고도 실천하지 못한 기준중위소득 현실화를 우선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재정지출을 통한 정부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보다 기준중위소득의 인상이 더 중요하다. 야당은 세제개편안 마련과 기준중위소득 결정 과정에 저소득층을 외면한 재정당국의 꼼수에 의문의 1패를 당하고도 그냥 있을 셈인가.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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