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울다
밤늦도록 우는 매미. 그 어떤 아득한 곳으로 잦아드는 울음이 경 읽는 소리 같다. 잠 아니 오고 침침한 육안으로 몇 줄 읽으려니 검은 글자들이 작은 개미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다. 문득 백지에 미끄러지는 듯 그간 숱하게 익은 단어 하나에 새삼 눈길이 갔다.
있다. 이는 아주 흔하디흔한 글자로서 웬만한 문장의 마무리를 담당하고 있는 단어다. 동사인지 형용사인지 잠시 헷갈렸다. 있다, 라는 건 뭘까.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일까. 있다,는 건 나의 몸이 이 세상에 하나의 물체로 공간을 차지하며, 시간에 편승하여 모종의 동작을 취하는 근거가 되는 말이다. 그동안 한번도 이 말의 의미를 따져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이 말의 짝패가 떠올랐다.
없다. 이 말이 없어도 과연 있다, 라는 상태가 성립할 수 있을까. 지금 읽고 있는 책의 본문이 검은 바탕에 검은 활자를 박아놓았다면 그건 글자가 없는 것과 같은 현상이 아닐까. 사전을 뒤적였더니 없다,는 형용사였다. 품사는 다르지만 결국 있다와 없다는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가지 더 기본적인 동사가 궁금해지고 생각나는 대로 손가락으로 허벅지에 써보았다. 가다, 오다, 보다, 듣다, 늙다…자다.
사람의 생(生)이 운영되는 방식은 갑자기이다.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여기로 내던져졌다가 또 그렇게 갑자기 이곳을 떠난다. 그런 소식을 듣는 방식도 갑자기이다. 공중을 휘젓는 전화벨이 예고도 없이 울리더니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세상 속을 산다지만 우리가 저런 방식과 이런 형식이 아니라면 시간의 안팎에서 어떻게 한 칸이나마 이동할 수 있겠는가.
추어탕으로 점심을 때우고 돌아와 느긋하게 오후로 진입하려는 순간 슬픈 소식을 들었다. 조금 전 사무실로 갑자기 날아든 신호는 함께 식사했던 직원에게 날아든 부음이었다. 나는 먹을 갈고 봉투를 마련했다. 謹弔, 삼가 冥福을 빕니다. 막내딸의 울음소리는 저승까지 들린다고 했던가. 눈가에 눈물 흔적을 애써 지웠지만 금방이라도 또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황망하게 조퇴하는 여직원에게 위로와 함께 한마디를 더 얹었다. 많이 울고 오세요.
우리는 운다. 울면서 간단해지고 간결해지고 가까워진다. 그래서 조금 가벼워진다.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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