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의 우리문화 들배지기] 문화통일 지렛대는 서예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 2022. 8. 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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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지만 마냥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다. 8월은 ‘광복’과 ‘망국’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간 우리는 광복만을 챙겼지 망국은 별로 생각지 못했다. 정인보와 같은 대한독립의 주역들을 따라 근 80년을 가까이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고 광복의 기쁨을 노래하면서도 정작 왜 나라가 망했는지에 대해서는 독하게 곱씹어 보지도 못했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

국망을 매국노 이완용을 욕하는 것으로 다 풀다시피 했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1910년 이전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가 말하듯 러일전쟁, 을사늑약, 정미칠조약과 같은 사건으로 단계단계로 확실하게 망해갔다. 답이 없는 현실정치를 생각하면 그때는 오죽했을까 싶지만 이런 연쇄적인 정치 패망의 사건 이면에 문화적인 정신승리가 없었다면 지금의 광복절도 기대할 수 없었다. 여기서 정신은 홍익인간이념이다. 민족주의자, 중도파,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까지 모두 조국독립을 위해 홍익인간의 깃발 아래 뭉쳤다. 극한의 실존에서 인류보편의 궁극의 가치를 고조선에서 찾아냈다. 김구의 ‘홍익인간’, 이승만의 ‘민족정기’와 같이 무수히 쓰고 또 써 내려간 지사들의 유묵은 일제 36년간 한국독립의 등불이 되었다. 휴머니즘과도 통하는 ‘홍익인간’은 이제는 남북통일의 지렛대이자 10대 경제 강국인 대한민국이 전쟁, 질병,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인류를 주체적으로 구원할 모토가 된다.

하지만 2022년의 대한민국을 홍익인간의 잣대로 보면 여전히 미완의 광복이다. 인류 차원의 문제를 해결할 우리의 이념 유무는 차치하고라도 남북분단은 문화적인 동질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 문제는 대한민국의 현대예술이 서구예술로 직통되는 현실, 즉 전통예술의 상실 내지 죽음의 양상을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식민지 서구화로 점철된 20세기 한국미술에서 우리 예술의 유전인자인 서예는 그 존재조차 미미했고, 한국화·동양화 역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한 존재로 전락하였다. 교육과 정책, 시장 등 인프라 측면에서 서예와 미술은 운동장이 서쪽으로 너무 기울어졌다. 이유는 문명개화를 위해 우리 역사전통을 우리 스스로 내다버렸기 때문이다.

‘서예는 미술도 아니다. 그래서 예술도 아니다’라는 식민지시대 일본화된 서구미술 척도가 우리 서화(書畵)를 재면서 서는 100여년 동안 미술에서 내쳐졌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는 1회부터 10회까지 서양화, 동양화와 나란히 서예가 있었으나 11회부터 공예가 서예 자리를 대신하였다. 초·중·고의 서예교육 부재는 당연하고, 30여년간 5개 사립대학의 서예학과도 지금은 폐과나 통폐합상태다. 대학 동양화과에서조차 서예과목을 필수로 이수하는 곳이 없다. 이런 현실은 초·중·고 필수에다 200개가 넘는 대학에 서법과가 개설되어 있는 중국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김수영이 ‘거대한 뿌리’에서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노래한 대로 이제는 우리 스스로 내다버린 ‘아름답고도’ 거대한 예술의 뿌리를 다시 심고 갈무리할 때가 왔다.

주지하다시피 대한제국은 1910년 8월29일 일제에 강점되었고, 1945년 8월15일 해방이 되자마자 미·소에 의해 분할 통치되면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은 정전상태로 70여년을 이어오고 있다. 2022년 8월 지금은 평화협정과 통일이라는 완전한 광복으로의 정치적인 도약은 고사하고 상호불신과 갈등만 팽배해져 있다. 하지만 통일은 정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은 통일은 그야말로 사상누각이다.

그래서 늦었다고 생각되는 지금일수록 전통예술로 남북한의 문화 동질성을 확인하고 회복하는 일은 더욱더 중요해졌다. 대한민국의 광복을 완성하고 망국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면 문화통일 100년의 첫 삽을 서예교육으로 떠내는 작업을 국가차원에서 착수해야 한다. 반도체가 한국경제를 견인한다면, 서예야말로 문화통일의 반도체다. 이번 광복절과 망국일에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을 휘호하면서 통일은 물론 인간의 길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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