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악수는 여자가 먼저 청해야 한다?

이슬비 기자 2022. 8. 5.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악수를 청할 때 상대방 성별이나 결혼 여부를 고민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택시나 버스 운전면허를 딸 생각이 있다면 황당한 ‘악수 예절’을 암기해야 한다. 택시·버스 등 운전 자격 시험을 주관하는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운송 서비스 과목에서 ‘악수를 청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명시하고 있다. ‘1)악수는 기혼자가 미혼자에게 2)선배가 후배에게 3)여자가 남자에게 4)승객이 직원에게 청한다’는 내용이다.

악수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여자가 남자에게, 반대로 남자가 여자에게 청할 수도 있다. 성별 문제가 아니다. 악수를 청하는 이와 받는 이를 왜 남녀로 구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또 악수하는 상대가 기혼인지 미혼인지는 알 길이 없다.

황당한 부분은 또 있다. 올바른 인사 예절 중에 ‘발뒤꿈치를 붙이되, 양발의 각도는 여자 15°, 남자는 30° 정도를 유지한다’는 설명이다. 평소 발뒤꿈치를 붙여 양발의 각도를 맞춰 인사해본 적도 없거니와 여자는 왜 15°인지, 남자는 왜 30°인지 성 차이 구분에 합당한 근거가 없다. 납득할 수 없는 시대착오적 문장이 툭툭 튀어나온다.

교통안전공단은 이런 자료를 택시·버스·화물차 등 운전자가 알아야 할 예절로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시험 문제로 출제까지 하고 있다. 매해 전국에서 운송 자격 시험을 보는 수만 명이 이 자료를 보고 시험을 치렀다. 공단은 민간이 관리하던 자격증 시험을 작년부터 주관하면서 자료를 만들었고, 올해 7월 말 자료를 최신 판으로 업데이트 했다. 이에 대해 묻자 교통안전공단은 “확인해봤더니 구시대적인 내용이 있어 수정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고 이런 자료를 만든 것이다.

공단은 “예절 관련 자료는 ‘공직자가 꼭 알아야 할 직장 예절’이라는 정부 서적을 활용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십 수년 전 행정안전부가 발간한 이 서적에는 더한 문구가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문장을 그대로 옮긴다. ‘관례상 서열 기준-직책이 없는 여성의 경우 기혼, 미망인, 이혼녀, 미혼 순위로 하며 기혼 여성은 남편의 직책 서열에 따른다.’ 이런 기준으로 ‘서열’을 정리한다는 데 동의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서양 에티켓에서는 여성은 결코 오만불손해서는 안 되며, 언제나 친절·선의·품위·총명·절도·예의 등을 갖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행동할 것을 강조한다’며 여자다움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여성이 승강기에 함께 타고 있을 때에는 불쾌한 언행을 해서는 안 된다’는 등 성별을 떠나 일반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상식을 여성에게 한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서적이 부처 산하기관의 예절 교육 자료로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역대 정부는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성(性) 평등을 주장했다. 각종 성 평등 정책을 내놓고 격론을 벌였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이런 문구조차 손보지 못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건 윤석열 정부도 거창한 담론에만 매몰돼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거대 담론에 묻혀 시간이 흘러가는 사이 오늘도 누군가는 이 황당한 악수 예절을 암기하고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