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사람을 살리는 法, 사람을 죽이는 法

2022. 8. 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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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銀제련술이 좌초되고
유럽이 IT 변혁 물결 못탄 건
법규제가 걸림돌 됐기 때문
시의적절한 법 이토록 중요
태어나서 5년간 자폐증으로 한마디 말도 못하던 아이가, 아빠가 주먹질당하는 모습에 큰소리로 외칩니다. "상해죄! 사람의 신체를 상해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첫 장면입니다. 전셋집 주인 아주머니는 커서 변호사 되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네고, 실제 대한민국 최초의 자폐인 변호사로 등장합니다. 법이 험한 세상을 건너가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김훈 작가와 프랑스의 스탕달이 매일 읽은 글은 법전입니다. 스탕달은 나폴레옹 민법전을 읽었고, 김훈은 우리 형법전을 숙독합니다. 간결한 법조문 속에 세상만사가 농축돼 있습니다. 형법 안에 인간 삶의 어둠과 고통이 담겨 있다면 민법에는 계약과 책임이 새겨져 있습니다. 딱딱하고 무미건조하지만 법은 우리 삶의 표준이 됩니다. 법은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무참한 폭력으로 사랑하는 딸을 잃은 어머니에게 법은 아무런 위로와 정의를 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헌법이 피해자의 재판 진술권을 규정하고 있지만 피해자 유족들의 한 맺힌 절규를 법적으로 충분히 보장하지 못합니다. 법원과 검찰의 양형과 상소권 행사 결정에 피해자 목소리를 좀 더 반영하는 입법이 필요합니다.

도전과 혁신을 가로막는 법은 역사 발전의 걸림돌이 됩니다. 16세기 초 조선에서는 획기적인 은(銀) 제련술이 발명됐으나 법으로 사용이 금지됩니다. 은 생산량이 늘어 생길 수 있는 사회 혼란과 중국의 조공 요구를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사이 우리 기술을 빼간 일본은 세계적인 은 생산국이 되어 막대한 국부를 축적하고 총포로 무장합니다. 21세기 들어 IT 변혁의 물결 앞에서 유럽이 법규제로 주춤하는 사이 미국의 구글과 와츠앱(WhatsApp)이 사이버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산업이 살아 숨쉬게 하려면 필요한 법을 제때 만들어야 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만 고쳐서도 곤란하지만, 너무 성급해서도 안 됩니다. 젊은 검사 시절 법무부에서 맡게 된 첫 과제가 특별사법경찰관 법률 개정 사안이었습니다. 맡은 일은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선배의 조언에 며칠 만에 개정안을 만들어 상사께 보고드렸는데, 엄한 질책을 받았습니다. 법률은 그 영향이 수십 년 가는데, 이렇게 쉽게 생각하니 법률가로서의 기본이 부족하다고 나무랐습니다. 이후 법률안을 검토할 때는 그 효과를 세밀히 살폈습니다. 가정폭력처벌법, 아동학대범죄처벌법, 중재산업진흥법이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법을 만드는 절차도 중요합니다. 전문가 의견을 모아야 하고, 국민의 목소리도 경청해야 합니다. 민법, 상법을 비롯한 민생법률을 관장하는 법무부 법무실은 체계적인 법률안 검토 시스템을 운용합니다. 외부전문가 연구용역, 전문위원회 심의, 입법예고, 공청회,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의결 절차가 대략 2년에 걸쳐 차근차근 이뤄집니다. 이후 국회 의결로 완성됩니다. 법무실장 임기가 보통 1년이기 때문에 통상 서너 명의 법무실장들이 대를 이어 관여합니다. 전임자가 뿌린 씨앗으로 내가 열매를 거두고, 내가 뿌린 씨앗은 몇 년 후 후임자가 거둡니다. 긴 호흡으로 정책을 추진하게 되고, 전임자가 뿌린 씨앗도 소중히 가꾸게 됩니다.

외국에 나가보면 대한민국 위상이 참 높아졌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독일에서도 한국학 열기가 퍼져가고 있습니다. 많은 독일인들이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광클릭을 합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전자제품박람회에서는 우리 기업들의 활약상이 눈부십니다. 대한민국의 문화와 국격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의 생명, 인권과 자유를 보호하는 법률입니다. 사람과 기업을 살리는 법이 있어야 선진국입니다.

[봉욱 전 대검 차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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