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도 놀란 '과수화상병 진단기술' 이게 'K-농업의 힘'

전주(전북)=정혁수 기자 2022. 8. 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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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석 국립농업과학원 화상병진단역학연구실장이 배양된 과수화상병 병원균이 들어있는 플레이트를 들고 연구실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혁수

"미국과 같은 농업선진국에서도 과수화상병은 불치병으로 통합니다. 병증(증상)으로 나타나야 감염여부 확인이 가능한 데 병원균의 검출강도가 엄청 낮거든요. 사전에 알 수가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효과적인 약제가 없어 감염된 과수는 매몰 또는 소각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과수화상병이 과수의 에이즈(AIDS), 구제역, 페스트( Pestis) 등으로 불리우는 건 다 사정이 있습니다"(박동석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연구관)

국내에 첫 과수화상병(Fire Blight)이 발생한 건 2015년 무렵이다. 미국에서는 1780년 화상병이 최초로 보고된 이후 연간 약 1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만큼 '고질병'으로 통했지만 2014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병 이었다. 2015년 경기안성과 충남천안 지역 과수원에서 집중 발생한 화상병 피해면적(5~12월)은 42.9ha(3개 지역, 43개 농가)에 달했다.

해마다 화상병이 반복되면서 현장에서는 "그들(병원균)을 막을 수 없다"는 패배감이 확산됐고, 감염된 과수를 뽑아내고 소각하느라 투입된 농촌 공무원과 민간인 수만 수 만여명을 기록했다. 2020년 충북충주에서는 과수화상병으로 연간 사과 생산물량의 90%가 소실되면서 1차산업에 의존하고 있던 지역경제가 '휘청'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농촌진흥청이 과수화상병 사전 예방활동을 강화하고 초정밀 진단 기술 개발에 나선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지금까지는 과수화상병이 발생하면 매몰 등 사후수습에 중점을 두었지만, 지자체·농가 단위의 사전 예방·예찰을 강화하면서 확산 차단에서 성과를 가져왔다. 특히 과수화상병의 신속한 사전대응을 위해 농진청이 개발한 '화상병 초정밀 진단 기술' 개발은 국내외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기술개발의 주역인 박동석 국립농업과학원 화상병진단역학연구실장은 "과수화상병에 감염되면 농가 피해도 크지만 그 확산 속도가 무척 빠르기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막기위해서는 무엇보다 과수화상병 정밀 예찰을 위한 진단기술 개발이 중요했다"고 했다.

사진은 과수원 현장에서 과수화상병 등 세균 감염여부를 판단할 때 사용하는 휴대용 실시간 유전자 증폭기 /사진=정혁수
박동석 국립농업과학원 화상병진단역학연구실장이 김경님 연구원과 함께 병원균 RT-PCR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정혁수

화상병 초정밀 진단 기술은 사람으로 치면 코로나19(COVID-19) 검사법과 유사하다. 실시간 유전자 증폭검사(PCR)를 이용해 과수화상병을 1시간 이내에 진단할 수 있다. 과수화상병 감염여부를 판정하기까지 기존에는 현장 시료채취 및 분석작업에 꼬박 3~5일이 걸렸지만 이 기술이 보급되면서 그 시간은 1시간 이내로 가능해 졌다.

이를 위해 빅데이터 분석기술을 토대로 과수화상병과 가지검은마름병의 병원균 유전체(Genome·게놈) 정보를 비교해 각 병원균만이 가진 유전자를 찾아내는 알고리즘과 유전자를 개발·발굴해 냈다. 이를 통해 기존 병원균 분리 배양후 DNA를 검사하던 단계를 생략하고 검체로부터 직접 검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병증이 나타나야 확인이 가능했지만 정밀 진단·검출 키트를 활용하면서 증상이 없어도 과수화상병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됐다. 병증이 보이지 않더라도 손톱만큼 자그마한 시료에 최소 10~100마리만 있어도 1시간 이내에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또 현장에서 혼선을 빚었던 가지검은마름병과 과수화상병 구분도 특이 검출 유전자 발굴을 통해 쉽게 해결했다.

국제적으로는 PCR 또는 real-time PCR 2가지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 방법들은 과수화상병과 병증이 매우 유사한 가지검은마름병을 효과적으로 구분하지 못하고 분석대상 검체의 핵산(DNA)을 하나하나 분리해야 해서 효율성이 낮았다.

박동석 농업연구관이 이끄는 화상병진단역학연구실이 2021년 농진청 최우수 전문연구실에 선정됐다. /사진=정혁수
박동석 화상병진단역학연구실장이 이미현 연구사(사진 맨 왼쪽) 등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정혁수

'정밀예찰 진단 키트'가 현장에 보급되면서 사전 예방활동 성과는 물론 국내 과수화상병 발생 빈도와 피해농가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2021년과 농가 보상금 최고치를 기록한 2020년 상황을 비교해 보면 △피해농가(744→618개) △피해면적(394.4→288.9ha) △보상금(727→483억원) 등 3개 항목의 감소세가 뚜렷했다.

농진청이 개발한 화상병 정밀 진단 키트는 과수산업과 연관된 국가 기관에서 키트로 보급됐으며 이같은 연구결과는 APS(미국 식물병리학회) 학술지 등 세계 유수의 학술지에 널리 소개됐다.

조재호 농촌진흥청장은 "과수화상병 확산에 대한 국내외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개발한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앞으로도 농업·농촌의 현장 애로를 해결하 수 있는 기술개발은 물론 농업을 미래성장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R&D투자와 기술지원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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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전북)=정혁수 기자 hyeoksoo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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