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공공재'라면 [슬기로운 기자생활]

이정규 2022. 8. 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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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기자생활]

게티이미지뱅크

[슬기로운 기자생활] 이정규 | 한겨레21부 취재2팀 기자

기자로 일하다 보면 내가 몰랐던 세상이 훅 들어온다. 올해도 여러 현장을 찾았다. 지어지고 있던 아파트가 무너져 건설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공사장을 갔다. 아파트 붕괴 현장에서 만난 유가족은 주말과 공휴일을 반납하고 가족을 위해 일해온 가장의 삶을 들려줬다. 휠체어에 올라탄 중증 뇌병변장애인과 함께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다. 절차에 맞춰 저상버스에 올라탔을 뿐인데 빨리 가라며 울리는 경적 소리에 괜스레 위축되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돼지농장에 일용직으로 취업해 일했다. 내 입으로 들어오는 육즙 좋은 돼지고기가 살아 있는 돼지의 모습으로 괴성을 지르며 무더운 축사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봤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부터, 정부부처의 수장이나 기업의 시이오까지. 취재하는 기자에게 모르는 세상을 가르쳐주는 사람들이 많다. 5년차 기자가 되니 저장된 전화번호만 해도 3천개가 넘어간다. 초면에 다짜고짜 말을 걸며 질문했던 사람은 셀 수 없다. 그들이 전하는 세상을 배워가며 기자는 어떻게든 정해진 마감에 맞춰 기사 한편 한편을 써간다. 기사가 나오기까지 도와준 그 모든 사람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다. 그래도 기자는 어쩌면 ‘공공재’라는 생각을 하며 미안한 감정을 털어낸다. 비배제성이나 비경합성과 같은 경제학적 정의가 아닌, 공공이 만들어가고 공공을 위해 쓰이는 존재로서의 공공재. 바닥의 삶부터 저 높은 꼭대기의 이야기까지 담는 공공재. 월급쟁이지만 조직을 넘어 시민을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아 일하는 그런 공공재 말이다.

거창하게 기자를 정의해봤지만 위기감은 여전하다. 업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만만찮다. 기레기라는 말은 어디를 가나 넘쳐난다. 좋은 유튜버들은 몇몇 기자들보다 더 훌륭한 저널리즘적 성과를 내곤 한다. 젊은 기자들이 언론을 떠나 사기업으로 이직한다는 소문을 빈번하게 듣는다. 종합일간지만 해도 주요 재원은 독자들이 줄고 있는 신문지면에 실린 대기업 광고로부터 나온다. 사람들이 점점 보지 않고 있는 신문지면 광고에서 내 월급이 나와도 되겠느냐는 죄책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제아무리 좋은 기사를 써도 기사 자체가 수익성을 내는 콘텐츠가 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도 “나는 공공재니까”라는 말을 되뇌곤 한다. 여전히 내가 몸담은 매체를 믿어주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는 이들이 많다. 아무것도 몰랐던 일들을 취재하게 되더라도 큰 걱정은 없다. 배경지식 없는 기자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친절하게 알려주고 설명해주는 취재원이 있기 때문이다. 연구원, 대학교수, 공무원, 시민단체 활동가, 작가 등 명분이 있는 취재라면 그들은 기자를 돕는다. 몇몇 선배는 사적인 술자리에 홍보팀을 불러 술값을 내게 했다는 전설이 떠도는 이 업계. 그래도 아직은 올드미디어가 쌓아 올린 신뢰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걸 일하며 확인하고 있다.

공공재로서 기자가 세상에 보답하는 일을 고민한다. 기자는 민주주의 사회의 유용한 도구일 테니까. 특종이나 통찰력 넘치는 기획기사는 못 쓰더라도, 시민의 삶과 말이 저기 저 높은 곳에 있는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는 기사라도 내려고 애쓰곤 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직접 경험해보시든가요. 저희도 한 나라의 시민이고 국민입니다. 무시하지 마시고 한 사람으로 받아주길 바라요.” 휠체어 장애인 김민정씨가 기자를 만나 전해줬던 이야기를 잊지 않고 기사에 꾹꾹 눌러 담았다.

보고 듣고 느낀 게 많아도 기사에 다 담기 어려울 때가 있다. 최근 취재하러 간 돼지농장에서는 기숙사에서 중국 동포와 함께 방을 쓰며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접했다. 농장 사람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내게 “네팔에서 왔냐”고 묻기도 했다. 옆에 있던 이주노동자의 표정은 확인하지 못했다.

이 밖에도 더 기억하려고 애쓰는 세상을 적어본다. 재개발 지역 주민, 노후 산업단지 사망 노동자, 성폭력 피해 청소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기자라는 이유로 들려줬던 이들의 이야기가 ‘공공재로서의 책임’을 줬다고 믿으니까.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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