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 가득한 첫인사

한겨레 2022. 8. 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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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외국 생활을 하다 보니 이 나라가 어떤 곳인지 잊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보이지 않는 도시> 라는 첫 책이 6월 말 출간되고 잉크도 마르기 전에 신문사 몇곳에서 기고 좀 해보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 이왕 이렇게 된 것, 첫 기고라 내가 누군지 파악도 못 했을 편집국이 어리바리한 틈을 타 재빠르게 필진 합류의 진짜 목적인 새 책 홍보나 바지런히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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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게티이미지뱅크

[크리틱]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보이지 않는 도시> 저자

24년 외국 생활을 하다 보니 이 나라가 어떤 곳인지 잊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보이지 않는 도시>라는 첫 책이 6월 말 출간되고 잉크도 마르기 전에 신문사 몇곳에서 기고 좀 해보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매일 수십권의 책이 쏟아지는 요즘, 며칠 만에 하필 이 책도 읽어보고 책 서평 기사도 내고 저자를 필진에 추가해보자라는 내부 논의까지 마칠 정도로 이곳이 빠르고 다이내믹한 나라다. “건축가가 글 좀 쓰네?”라는 내 칭찬을 가장한 동료 건축가들에 대한 집단 매도를 내가 못 알아먹을 거라 자만한 <한겨레> 편집국의 필진 합류 제안에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그런데 예전에 소소한 인연이 있었던 고 구본준 기자에 대한 먹먹한 마음과, 첫 책인데 저자가 나서 홍보를 해주어야 한다는 출판사의 압력에 더럭 제안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첫 글을 쓰면서 바로 후회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첫 기고라 내가 누군지 파악도 못 했을 편집국이 어리바리한 틈을 타 재빠르게 필진 합류의 진짜 목적인 새 책 홍보나 바지런히 하련다.

멀리 여행을 다녀오면 다른 곳의 생소함만큼이나 돌아왔을 때 자기 주변이 새삼스레 보이는 경험들 많이 해봤으리라. 며칠의 여행도 그러한데 인생의 절반을 서울에서, 다른 절반을 파리에서 살다 보니 자연스레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경계인의 시각을 갖게 됐나 보다. 가끔 들르는 고향 서울 구석구석 예전에 살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보였고, 그런 것들을 꾸준히 기록해 나열한 여행 일지가 이 책이다. 생업인 건축가의 눈으로 바라본 피사체는 ‘도시’이지만, 사실 건축이나 도시보다는 우리 일상의 모습과 그 이면에 더 질문의 무게중심이 가 있다. 어차피 계속 외국에서 지내다 보니 하루에도 몇건씩 사건이 터지는 국내 뉴스에 둔감하고 대부분 놓치고 지나가기 일쑤라, 시류에 맞고 시의성이 있는 글쓰기는 애당초 틀려먹었다는 지정학적 한계는 솔직히 인정하련다. 그러면 차라리 유행 덜 타는 보편적 공간론을 위주로 써볼까 머리를 굴리던 중, “아! 그러면 책에 쓴 내용들을 추려서 여기에 조금씩 소개하면 책 홍보도 되고 나도 매달 원고 때문에 스트레스 안 받고 얼마나 좋아…”라는 영악한 비책을 떠올린다. 어차피 이 책을 사볼 독자가 그리 많을 것 같지 않으니, 기껏 써놓은 내용들 서점 구석 책꽂이 속으로 사장시키는 것보다 얼마나 참신하고 지속가능한 아이디어인가?

사실 이 책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로맨틱한 도시로 ‘알려진’ 파리라는 도시 여행안내도 아니고, 외국의 유명한 도시와 비교해서 우리 도시를 비판하는 내용은 더더욱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질문이라도 해야 하고, 그 질문을 머릿속에서 익히고 숙성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질문의 ‘과녁’이 바뀌는 때가 온다. 우리가 요즘 흔히 ‘인사이트’라고 부르는 통찰의 뒷면에는 대부분 이런 과정이 숨어 있다. 이 책은 그 질문의 과녁이 바뀌는 순간 발견한 저자의 개인적인 깨달음을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서 기록했다. <한겨레> 서평(6월25일치)에도 소개된 1장, 1997년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티브이 프로그램 ‘양심 냉장고’ 에피소드로 이 책은 시작한다. 서울과 파리 신호등이 놓인 위치 차이를 발견하고, 그들은 시민들이 질서를 ‘지킬 수밖에 없도록’ 도시를 만들었고, 반대로 우리는 “사람들이 지킬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생각의 차이를 발견하자, 그러면 왜 다를까라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고, 결국 다문화와 단일문화의 차이에 기인한다는 깨달음에 다다르게 되는 식이다. 이런 장이 10개가 있으니 앞으로 나는 최소 1년치 글감을 확보한 셈이다. 그러나 이 내용 다 보려면 앞으로 1년은 힘들게 기다려야 하니 이쯤에서 항복하시고 책을 먼저 주문하는 게 어떨는지요. 존경하는 독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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